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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이스트 - SYRomance
이서형 지음 / 신영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만인은 만인에 대한 늑대’지만 ‘사회계약론’의 일종의 하부구조이다. 일단 사회가 성립된 다음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착취가 있는 것이고, 경쟁과 재화가 생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타인을 맹목적이거나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랭보의 말대로 진정한 사랑은 없다.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 사랑이나 일종의 맞교환으로써의 연애만이 있을 뿐이다. 플라토닉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얼마나 머리를 잘 굴려 살아남을 방도만을 책략하는 것이다.
요즘에 들어, 미국의 거대한 사치와 자본주의의 물결이 당도한 지금 철학이나 사상은 쓸모없는 분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사상속에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진리가 부분적으로 첨삭되어 있는 것이니 우리가 단지 생산기계-소비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삶 내면에서의 의미를 갈구해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원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친구는 없는 법이고, 모든 게 부의 물결 속에 규정되어 진다. 사랑은 재창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슨 사랑? 무슨 행복?
입 닥치고 인정하자. ‘소울메이트’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3년간의 연애감정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남녀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심지어 관계를 이혼과 같은 형태로 끊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에 중요한 건 개인의 ‘스펙’의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학벌은 엄청나게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질러 한 명의 왕을 만들기도 하며, 한 명의 노예를 창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돈이 최고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최소생활비와 약간의 책들을 사볼 정도의 금액은 있어야겠지만, 중요한 건 외관적인 게 아니다. 본질은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이야말로 휴머니즘의 반대편에 있는 몰도덕적 파급효과라 생각한다. 가족중심주의는 항시 개인을 핵가족으로 묶어 이기주의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왜 우리는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도했으면서도 신자유주의에 불평하는가?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안전이 병존하여 우리를 정립하는가? 모든 건 계약이다. 자기 자신의 움직임도 미리 결과에 대한 계약이라고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없다. 박애주의나 휴머니즘도 없다. 오로지 쌍방의 계약 혹은 다다한 계약의 층위만이 사회를 합법칙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군중심리나 마녀사냥 같은 인간적인 걸 싫어한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건 사회계약론과 동의어가 될 수 있으므로 이윽고 나는 반휴머니스트다.
사르트르의 반휴머니즘적 태도가 지금에 와서 옳았다고 난 생각한다. 한국 최대의 도시 서울은 쾌락에 젖어 있다. 일명 'City of sex'이다. 쾌락만을 추구하고 그 쾌락에 도달하기 위해 제도권 공부를 인내하며, 튀지 못하고 둥글둥글하게 직장잡고 결혼해 생활하는 일반인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째서 사르트르는 계약 결혼을 했는가? 그리고 그는 왜 이념에 따라 노벨 문학상을 거부했는가. 그건 바로 철학예술가인 사르트르의 본질을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을 선행한다 했지만, 사실 실존의 연장이 바로 본질이라 말할 수 있다면, 답은 간단한 것이다. 우리는 좀더 실존주의에 도취되어야 할 당위적인 근거들이 산재해있다. 20세기를 휩쓸었던 실존주의, 그리고 카프카가 말하는 실존의 진정한 의미.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 글의 주제는 신자유주의 사회이자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비정하게 서로를 이용해먹어야 하며, 사기가 난무할수록 사회라는 질량은 더 비대해진다. 즉 나는 비도덕성이 옳다고 증명해보이려는 것이다. 모럴리스트 카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세상은 너무 더럽혀졌다. 옛날보다 살기는 훨씬 수월해졌지만 언제까지나 자본에 의한 노예는 한국인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이다. 그렇다면 난 어떤 도출로 말미암아 하나의 일관성 있는 방향의식을 상정해야 하는가? 아니다. 오직 공리주의와 세계경제라는 모럴헤저드가 ‘장 보드리야르’의 내파라는 개념에 입각해 완전한 핵폭발을 일으켜야 할 터이다.
본질, 그러니까 선의 본질이 아니라 포유류인 인간이 가진 짐승적인 본질을 찾아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도 같은 거친 야생성을 사로잡아라.
우리는 지금 서로 우리 목에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고 나 아닌 다른 존재는 무방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상으로 에고이스트인 나의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