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까치글방 138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 옮김 / 까치 / 199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완벽한 생을 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을 부러워하며 나는 하루하루 과거를 소급해보며 ‘재탄생’을 위한 발로를 갖기 위해 거리를 산책하거나 가만히 공상에 잠기곤 했다.



20살 때는 대학에 갈 생각을 안 했다. 그저 본질을 구현하고자 하는 심엄한 노력의 치열만이 거기에 잔존했다. 나는 나의 기투를 하이데거식 ‘현존재’로 시현코자 했다. 그러나 본질 하나만으로는 그 어떤 존재도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르트르 말마따나 ‘본질 자체’만으로는 그 어떠한 것도 될 수 없다. 그렇다. 존재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질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현상 편린’의 연쇄를 하나의 ‘현상학’적 방법으로 상정되는 것이다. 그것이 대자적인 ‘인간 실존’이요, ‘절대 정신’, ‘객관 정신’, ‘주관 정신’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비전의 수립인 것이다.



지금 내 나이 24살, 대학을 가기에는 늦은 나이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고졸로 독학을 해 엄청난 양의 학식을 쌓아 저서를 쏟아냈지만 이는 그 시절이 아직 근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탈근대인 현대는 더욱더 대학이 시대정신과 모든 학문의 범주의 총아로서 떠오르는 중심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이를 거스를 수 없다. 물론 대학을 위한 공부는 제도권 공부라는 수단을 피해갈 수 없다. 그 핵심이 국어, 수학, 영어, 사회이다. 번호를 매겨 출제되는 문제들의 주체성을 의심한다는 건 진부한 짓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이런 학문의 기계화를 수모하고 난 미래를 열어가는 지평을 새롭게 정초해야 한다. 고졸로 남는다면 그저 주저앉음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학계도 무릇 학벌을 ‘사회 일반’보다 더 엄격히 따지는데 내가 꼭 대학에 가지 않으면 난 저명한 학자의 제반을 포기하는 것일 테다. 포기란 있을 수 없다.



요즘은 ‘임석진’이 감수한 ‘철학사전’을 도취된 채 보고 있다. 이 사전은 현재까지 나온 한국 학사상 유례없는 대사전인데 가격도 30만원이 넘어가는 ‘대’가격을 자랑하고 있다. 나는 이 사전으로 말미암아 철학 기본 용어의 어원과 그 심원함의 도를 깨달았고, 절두절미 내 철학지식의 윤곽이 명정하게 잡혀가는 기분 좋은 성취감을 맛보았다. 이미 세계 철학사상의 정석이 된 서구철학과 이데올로기를 알기 위해서는 이를 주조하는 기본 용어들의 철두철미한 파악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방대한 학식을 쌓지 않고는 그 누구도 내가 세상을 안다고 방약무도하게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안다는 것은 곧 양심 있는 ‘영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고 더 광활무비한 의식지평의 확장을 꾀한다는 ‘학인’으로서의 윤리의 열정성을 의미한다. 사르트르는 ‘근본’을 중시하는 철학계를 일약 전회시켜 ‘실존’의 선행을 창도했고, 이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생을 만들어 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정할 수 있다는 미래지향적인 고색창연함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전범을 그는 20세기 초에 이미 정립한 것이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 사실 그럴 나이이기도 하다. 사실 애인이란 사춘기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사람에게 있어서는 꼭 필요한 게 ‘현실’이다. 인간은 아직 ‘짐승’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포유류적 존재이므로, 섹스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공격성을 달리 다스릴 방도가 없다. 결혼한 사람에게도 물론 애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첩’이라는 제도가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결혼 이후의 이성을 확보하는 것을 불법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법적으로 피고인을 된통 당하게 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도 결혼 이후의 이성 확보는 죄악이요, 간음이다. [성서]에서는 결혼을 통하지 않은 성관계를 ‘범죄’로 지정하고 있다. 사실 난 이런 결혼 이후까지 생각할 처지는 아니다. 나는 ‘자식’이라는 방해물 없이 홀로 평생 학문을 탐구할 것이다. 자식은 지식인은 물론 예술가에게 있어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 사고방식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자식에게 그 가문의 책무를 지워주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결혼에 반대하거니와 사르트르가 계약 결혼을 했던 것을 위대하게 생각한다. 그는 자식을 두지 않아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것이다. 루소 역시 자식을 고아원에 버려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좀더 냉엄해지고 비인간적으로 전화되어 참된 지식으로의 이월을 꾀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자. 각성과 흥분의 파노라마에 휩쓸려 사상의 향연을 분출하며 세대를 철두철미 파악하려는 자세를 갖자. 동정심과 애정을 갖지 말고 오직 ‘이데올로기의 날카로운 칼날’로 사회를 매스로 도식화시키는 ‘차가운 지성’의 묘미를 깨우치자. 모든 불미로운 감정의 맹아를 제거하여 절치부심하지 않고 하나의 객관화된 유물론적 관점에서 우주의 근원을 초월하는 자세를 취하자. 따라서 ‘탈아’하여 정치한 ‘전체적’ 지적 시도의 일괄만을 적시하라. 자아라는 방해물에서 벗어나 실존적 지의 구체적 지양을 표본하라. 이념의 가없는 색채의 유별을 깨닫고 허물없는 영혼의 ‘의’를 유미하라.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감에 따라 내 글도 저문다. 하루를 보내고 또 내일이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가 언제나 새롭고 날마다 더 진화되어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획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목적론적 의식과 과도한 독서는 창의성을 고갈시키는 법이다. ‘의식 그자체로’, ‘사태 그자체로’, 전진해나가야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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