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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기도법 - 불교신행총서 1 ㅣ 불교신행총서 1
일타 / 효림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p.s 이광수의 무정을 읽었습니다. 실로 가슴이 벅차고 사람을 흐느끼게 하는 감동의 대서사였습니다. 그러나 이광수가 중년이 넘어서 불교에 심취했듯 불교의 정신이란 대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엄숙한 길입니다. 저는 대가는 아니지만 불교가 상징하는 바를 깊이 배우려고 합니다. 인간을 초월하여 즉 죽음과 삶의 세계를 초극하여 신의 저편에 입적하여 탈속한 선험의 세계를 깨우치려 하면 평생이 가도 부족함을 아는바 한시도 버리지 말고 삶을 진심으로 살고자 하는 게 제 뜻입니다.
야심은 욕심을 추상적으로, 범주를 과장하여 키운 하나의 욕망에 불과하다. 야심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진정으로 학문을 하는 자라면, 무명을 버리고 즉 자기 안의 온갖 미혹과 번뇌를 떨치고 일어서 일체개고한 사바세계를 잊고 열반숙적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결코 타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허방지방함을 정회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호연지기하게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희망의 불야성조차 그릇된 걸로 삼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선禪을 추구하는 입도자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어떤 묘방한 계책이나 반간지계도 이러한 자들의 도를 구하는 자세의 일변을 막아설 수는 없는바, 나는 구도자의 깨끗함을 무릇 이해하고 모름지기 승려로서의 청신함을 지향하는 일편단심의 태도를 지켜 삼라만상의 세계를 일축하여 내선일체로 표양하고자 하는 마음의 눈을 펼쳐 보일 것이리라. 세계를 떠도는 천애지각한 혼들을 일소에 부치고, 세계에 잔존하는 극소수의 맑은 자들 곧 나의 지기지우들과 상합하여 세상을 증도하여, 중생들의 무지함을 구제할 것이다. 한 인간이 성공하고자 대갈일성하는 것은 그럴 자신이 없는 게 부소부지이다. 오히려 자신이 있는 자는 자신의 의취를 표현하지 않으며 미상불 그들 욕심쟁이의 무지를 비웃고 그들보다 더 멀리 보며 거시적으로 미래를 예언하고 미시적인 세계를 꿰뚫어 묘파하는 게 군자로서 해야할 마땅한 도리라고 낙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욕심과 포장은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게 하거니와 도리어 한 사내의 뜻을 방해하는 마성적인 힘으로서 스피노자적 실체를 추구하는 절대정신을 꺾는 불순물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사업가란 돈을 탐하지 않고, 진정한 문호란 노벨문학상을 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담담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마음을 비워 세상에 자신의 힘을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절절한 자세로 신묘하게 호랑이가 발톱을 감추듯 자신의 능력을 감추는 것이다. 최고의 실력가는 야심가가 아니라 승려다. 그들은 열정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아무 것도 거리낄 게 없는 평안한 마음 즉 대정의 상주불변한 자세에서 자신의 영혼을 누이려고 하지만 야심가들은 세상을 유위변전한 원자와 단자의 세계로 상정한다. 이는 바로 대사상가의 한계를 드러내는 발로에 전혀이다. 필시 한계를 극복하려면 모든 욕을 다 버리고 수양하는 자세로 자신을 변용해,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깃발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바람이 불어서 그렇다는 점을 깨우치는 자와 같이 사물의 본질을 바로 아는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함이다.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욕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진배없다. 왜냐하면 욕심이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 하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학문을 하는 자는 이미 책 앞에서 탈아하여 아공의 경지에 입적해있다. 책과 하나가 되어,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어 육조단경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독서삼매에 열중하게 된다. 그러니 그 누가 이 학자를 막아설 수 있으리오?
예부터 목숨을 버려야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현인들의 말이 세간에 떠돌았다. 목적론적인 고군분투는 마치 짐승의 그것과 다름 없다. 만약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설정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목적론의 세계에서 탈피하여 이미 기투되어 있는 자신을 넘어서서 더이상의 윤희의 수레바퀴에 굴러가지 않는 자신의 법을 구해야할 터이다. 자신을 회향하고 그리고 나서 세상 중생들을 회향해야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요, 그다음이 세상과의 싸움이니라. 욕심따위로 자신의 미래를 상정하는 자에게는 불행만이 가득할 진저!
서양의 목적론적 체계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 관념론의 세계에서 자유자재로 뛰어 노는 선악의 피안에서 엄존하는 자유의 영혼으로서 우주 전체를 하나로 표상하는 게 바로 학자로서의 나의 임무일지라.
양주시 개인의 서재에서 ‘미석 박준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