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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매 학기마다 각종 설문지를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 폭력에 대한 실태 조사" 따위의 제목을 달고 나온 설문지들.
늘 '비밀엄수', '개인 정보 보호 철저' 등의 단어가 제목 뒤에 따라붙지만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맨 뒷줄에 앉은 아이에게 설문지를 걷어오도록 시키는
선생님 밑에서 도대체 어떤 비밀이 보장된단 말인가.
그렇게 가벼운 갱지는 낭비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은 후엔 조금의 위안이 생겼다.
누군가는 그 갱지를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작가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설문조사를 토대로 연구를 한다면, 설문의 응답 자체를 두고 연구하기 보다
그 응답이 나오게 된 배경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는 사람인 셈이다.
이러한 작업은 양적 조사에 비해 훨씬 고생스럽지만 결과를 인정받기는 매우 힘들다.
수치로 딱 맞아떨어지는 값이 나오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러한 연구의 가치를 폄훼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다.
응답할 수 없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말이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우리와 가깝지만 먼 이야기들이다.
분명 우리의 근처에 있지만 애써 눈길을 주지않는 것들이란 표현이 적절하려나.
모두가 알고있지만 일상의 대화 소재로조차 쓰기 껄끄러웠던 주제들을
쉽고 편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풀어써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아픔의 길을 대신 걸어주는 한 학자에게 감사하다.
+책의 띠지에 있는 2017 <조선일보> 올해의 저자라는 문구는 몇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지않는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더더욱 의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