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음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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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개에도 되어있는 것 처럼 제조업 생산관리직으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해왔습니다.

국내현장, 해외현장에서 6년정도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본사에서 근무중인데요. 요즘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해 국내 제조업이 위기라는 기사는 다들 많이 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제조업의 메카라고 불릴만한 곳은 제 생각에는 울산, 거제, 여수, 창원 등이 있는데요.

그 중 강성, 귀족 노조라고 오해 받으며 설립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배를 만들어 수출한 현대 중공업이 있는 울산의 역사에 대해 많이 궁금하던 찰나

정말 한 두가지의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지금의 울산을 낱낱이 분석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의 서평단 모집 공고를 보았고, 제가 지냈던 예전 여수 생활을 생각하면서 지금 당면한 대기업 제조업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저도 함께 분석하고 공감하고자 서평단에 신청하였습니다.

과연 현대차 노조는 처음부터 어떻게 조직하게 된 것인지, UNIST 라는 세계 유수의 대학을 소유한 도시에서 왜 청년 순유출이 일어나는지, 정말 여성은 울산에서 여성이 약하기 때문에 제조업에 종사할 수 없는 것인지 등 평소 제조업 도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질문에 대해 정말 철저하게 분석한 책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첫인상

주요 내용



이 책의 시작은 성급하게도(?) 2030년의 울산의 미래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고령화되고, 진보하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도시가 된 울산. 과연 어떤일이 있었던 걸까요?



산업도시의 발달은 그 도시 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의 발전까지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수, 광양의 발전에 맞춰 순천이 소비도시가 되는 것과 같이, 거제와 통영의 관계처럼 (비록 토박이들은 불만이 많겠지만) 원천적인 부는 산업도시의 제조업들이 만들어준다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입사하고 1년 반정도 3교대 현장 근무에 바로 투입되었어서 저런 괴리감이 조금 적었지만 동종사의 경우 엔지니어에게 현장근무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어요. 설계 지식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직접 돌려보면서 지식이 쌓이는 법인데 (그래서 꼭 과학 공학 수업에는 실험이 함께 붙어있죠), 결국 저런 현장과의 괴리가 엔지니어의 역량 약화 및 현장 근로자의 숙련도 저하에 기여했다는 점은 안타까웠습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저자의 생각을 녹여내기 위해 다양한 통계를 활용한 것과 더불어 제조업 종사자의 의견을 생생하게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지만, 이론과 현장의 관계를 잘표현한 문단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제조업이 발달한 도시에서 현장 맞춤의 인재를 공급하기 위해 꼭 필요한게 하나 있죠. 종합대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입니다. 공고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교육을 담당한다면, 기술적인 부분은 대학교에서 맡게 한다는 점이죠. 다만 이 책에서도 묘사되는 것과 같이 엔지니어와 더불어 많은 교원들이 울산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이슈가 있습니다. 수도권에 살고 싶어하는 욕구를 반영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구소를 현장과 떨어진 수도권에 배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울산은 어떻게 강성노조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까요? 다른 노조들과는 다르게 울산의 제조업 노조는 태생부터 학생 출신의 노동자들이 아닌 자체의 노동자들이 조직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다만 노조의 결성 이유가 지금과 같이 임금협상보다는 정말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한 점 (작업 반장이 때리거나 욕설을 한다는 점, 두발 단속과 같은 비인간적인 대우 개선)이 우선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의 노조 활동은 초기 결성 목적과는 다르게 사측과 노조측 모두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직무전환을 위한 재교육이나 요즘처럼 전기차 도입을 위한 생산벨트 교체등 유연하게 대처할 부분이 있는데 서로에 대한 불신이 높다보니 사측은 정규직 신입사원을 뽑지도 않을 뿐더러 현상 유지를 위한 시간 때우기만 하고 있는거죠. 이러다보니, 임금대비 경쟁력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고, 숙련도가 필요한 곳에 자동화 비율이 높아지다보니 신규 노동 유입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쟁의기간 동안 생긴 손실에 대해서도 특근과 잔업으로 커버가 가능할 정도로 지금은 자동화가 많이 진행되어있고,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도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예전 표현으로 "정규직은 오른쪽 바퀴를 달고 비정규직은 왼쪽 바퀴를 달고있는" 그림이 그려지는 게 바람직한 노사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울산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정규직, 대기업, 남성 위주의 카르텔이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여기에 표현되어있는 것 처럼 여성 노동자가 화학적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고 생각합니다만,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 엔지니어가 많기 때문에 여성이 못할일이 있을까 싶어요.



또한 생산직 노동자들의 일도 책에서 표현된 것 처럼 "밭 매는 아지매가 오더라도" 할 수 있게 단순화된 작업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독 울산은 남자들'만' 일하는 직장이 많다고 합니다.



결국 남성, 생산직 (노조), 대기업 정규직 카테고리에 있거나, 그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의 가족이 아니라면 울산에서 돈을 벌면서 살긴 어렵다는 현실이 지금의 디스토피아를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중국발 과잉 생산 압력이 지금과 같이 강해지는 시기에 정부에서도 딱히 울산에 있는 중화학 산업들을 살려야할 이유를 못찾을 수도 있고, 강성 노조와 남초 직장이라는 이미지 외에 울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장점이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첨단소재나 신재생에너지로 활로를 찾아보려는 노력도 가상합니다. 예전 울산 부시장님이 쓰신 넥스트 레볼루션이라는 책도 흥미있게 읽었어요. 실제로 수소 사업 개발을 위해 울산을 방문하면 대부분의 사무관분들이 많이 협조적입니다. 다만 아직도 친환경 사업은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2020년에 비해 정권이 바뀌어서 드라이브가 잘 안걸리는 것 같습니다. 산업 구조를 바꾸면서 울산의 생존 방법을 찾는다는게 저는 아직 낙관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지금도 숙련제 도입을 위해서 힘쓰고 있는 사측과 숙련제 도입은 연봉제 도입과 정년 보장을 깨버리는 사측의 전략이라고 반박하고 있는 노조의 입장에서 어떻게 유연하게 어느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현재의 산업 환경에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한해 한해를 넘기며 임금인상과 복지 개선이라는 주제만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좀 더 긴 호흡에서 서로 진솔한 대화를 통해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산업에는 cycle이 있다고 합니다. 도박은 파도와 같아서 내려갔다 하면 올라가고 올라갔다 하면 내려간다는 호구의 명대사처럼 과연 이번 전기차의 약진과 중국의 공급과잉도 한 번 지나가는 사이클일까요? 이러한 외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통해 그동안 곪아있던 내부의 문제점이 드러나는게 아닐까요?

이 책의 제목은 울산의 디스토피아 이지만, 글 처음에도 소개 드린 것 처럼 대한민국 대부분의 산업단지에서 이러한 잠재적인 문제가 곪아있진 않을까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게 과연 울산만의 문제일까? 오히려 다른 산업도시에서 비슷한 계기가 발생한다면 더 큰 폭풍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공천학살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마무리

저도 귀국하고 처음 직장을 잡을 때 가장먼저 고려한 것이 출퇴근 시간이 짧은 지방 공장 근무였습니다. 아무래도 집값도 저렴하고 자리잡기가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공장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와 다양한 능력 및 개성을 발휘할 수 없는 제한적인 기회, 알게 모르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지방 출신들의 강한 커넥션 (실은 이부분도 책에서 다뤄주길 바라...), 공단 근처의 살인적인 물가 등 어두운 부분만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글을 따로 쓰겠지만, 정말 영화인가 싶은 정도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지금 기분으로는 다시는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 같지만요.

울산의 역사를 다루면서 통계를 늘어놓고 분석만 하면 쉽게 읽는데 지치고 어려워질 수 있는데, 중간 중간에 종사자들과 나눈 대화도 있고, 적절한 삽화도 있어 읽는데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제조업의 위기와 지방 소멸이라는 방대한 내용을 알기 쉽게 다룬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조업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인 울산이 저렇다면 다른 제조업 중심의 도시는 앞으로 어떨까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문제들이 빨리 수면위로 올라와서 공개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읽고난 뒤 주관적인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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