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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잣는 물레를 부수고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황소연 옮김 / 든 / 2026년 9월
평점 :

어릴 적 읽은 대부분의 동화에서 공주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 시련을 겪고, 왕자는 위기에 빠진 공주를 구하며,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 이러한 결말은 어린 나에게 참 로맨틱한 이야기였고, 나도 그런 왕자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동화를 다시 읽으니, 공주는 왜 왕자를 기다리기만 하는지, 공주를 구하는 일은 왜 왕자만 할 수 있는지, 왜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지 답답했다. 그러나 '그(프림로즈)의 멍하고 무기력한 표정이 말해준다. 이전에도 수없이 들은 그들의 말이 족쇄가 되어 그를 옭아맸음을. 이 악순환이 너무나 익숙해 아예 무감각해졌음을.'(p.107) 이 문장처럼 정해진 역할과 말에 길들여지다 보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믿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무기력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공주들은 어쩔 수 없었겠다 싶어 씁쓸했다. 그리고 그동안 공주의 이야기로만 기억하던 동화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과 악역의 사정,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마음까지 다시 헤아려 보게 되었고, 새롭고 신선한 자극 속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은 시간이었다.
만약 모든 공주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할 기회와 용기, 그리고 곁에서 지지하고 돕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는 많은 시련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시련 속에서 나를 구해 준 것은 왕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도움이 있었지만, 결국 모든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했다. 그래서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의 모습, 결과가 정해져 있는 운명 앞에서 화가 나기도,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지니아와 프림로즈는 정해진 결말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웠다.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라,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함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동화와는 다른 반전이 곳곳에 있어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이 퀴어한 이야기임을 잊지 말기를...
책을 덮고 나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의 마지막 문장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행복한 결말은 누군가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니아와 프림로즈에게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정해진 결말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결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서로의 손을 잡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물레'가 있을지 모른다. 타인의 기대일 수도,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일 수도, 스스로 만들어 낸 한계일 수도 있다. 그것을 당장 완전히 부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지 한 번쯤 질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주의 그늘 아래에서 성장하는 건 어떤 느낌이었을까.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이야기가 얼마나 증오스러웠을까. 그의 증오심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공주는 물렛가락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고 이야기의 그 잔인한 굴레를 벗어나기엔 무력했으니까. - P23
내 페이지에서 그들의 페이지로 잉크처럼 스며들 수만 있다면, 펜으로 한 페이지에 같은 단어를 겹쳐 쓰고 또 쓰듯이 서로 겹쳐진 수천 개의 현실 속에서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또 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샴이 말한 서술 공명이라는 건 정확히 무엇일까. - P120
죽어가는 여자의 철칙 같은 건 쓰레기 같은 헛소리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죽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려고 애써야 되는 게 아닐까.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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