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그런 사랑
이레 지음 / 웨잇포잇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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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책 표지에는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하기까지 내뱉는 말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연필로 선이 그어져 있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운 것이 아니라 선을 그어 남겨 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지나간 사랑의 기억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마음 한편에 머문다는 것을 표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시작하고, 관계가 깊어지고, 결국 이별을 지나 정리하게 되는 사랑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표지 같았다.

첫 만남, 첫걸음, 첫사랑처럼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들은 언제나 서툴고 어렵지만 그만큼 더 특별하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진심이었고, 어설펐기에 더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어쩌면 사랑도 그런 '처음'의 연속이 아닐까. 누군가와 함께하고 이별하고 정리하는 순간까지, 모두 낯설지만 꼭 필요한 경험이다. 이 책에는 그런 사랑의 여러 순간들이 담겨 있고, 그렇기에 사랑과 이별 가운데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과 함께하는 기쁨을 배우고, 이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법과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으니 말이다. 결국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랑이란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과거만 바라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현재에만 머무르면 관계의 방향을 잃기 쉬우며, 미래만 바라보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 않을까. 함께했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더 사랑하고, 앞으로 함께할 미래를 그리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랑을 이어 가는 힘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한 감정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앞의 글과 뒤의 글 사이의 연결고리가 느슨하다 보니,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가도 문득 맥락을 잃곤 했다. 에세이 특유의 단상적인 서술이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몰입이 끊기는 순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 번에 다 읽기보다는 조금씩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맞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점이 있다. 지나간 사랑은 끝났을지라도 그 시간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배움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우리의 삶 속에 계속 남아 있는 기억이자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무형의 어떤 것에 지배당하고 나면, 우리 안에는 작은 우주 하나가 생성된다. 이전까지는 서로 무관하게 흘러가던 것들이 중력처럼 끌리기 시작하고, 아무 의미 없던 행동과 사건들이 하나의 궤도를 갖는다. 그렇게 의미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 P17

무한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너무 짧게 사랑하고, 너무 깊이 기억한다. - P139

우리는 잊는 존재가 아니라, 경험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존재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옆에 밀려나 자리를 옮겨 앉아 있다가, 아무 이유 없는 날, 숫자 하나의 형태로 다시 말을 걸어올 뿐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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