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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가해자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손현주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친밀한 가해자》를 읽으며 가장 먼저 놀랐던 것은, 쓰러진 할머니를 두고 신고하지 않은 준형과 부모의 태도였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지금이라도 빨리 신고했으면' 바라는 마음이 커졌고, 사건의 결과를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해 답답했다. 그런 준형의 부모를 지켜보며, '어른의 침묵은 아이를 보호하는 선택일까, 아니면 또 다른 가해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명분 아래 진실을 외면하는 태도는 오히려 상황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침묵이 때로는 가장 잔인한 방치가 될 수 있다는 것, 진실을 마주할 기회조차 빼앗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폭력이 반드시 악의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특별히 잔인한 인물도, 명백한 가해 의도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다만 평범한 일상과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가해는 서서히 만들어지고 조용히 은폐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비상계단 사고 이후, 준형의 마음을 채운 감정이 죄책감보다 억울함이었다는 설정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상황과 타인에게 돌리고 싶은 마음은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명확한 악의가 없었다면, 의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가해가 아닐까? 일상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잘못들을 떠올리니, 인물들의 선택을 비판하면서도 나라면 정말 다르게 행동했을까 하는 불편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빠르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았다. 준형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진실보다, 흔들리는 내면과 주변 인물들의 반응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죄책감과 억울함, 침묵과 회피 사이를 오가는 준형의 선택을 지켜보며, 이것이 결코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거짓말을 묵인할 것인지, 불편한 진실을 말할 것인지. 이런 일상의 선택들이 모여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덮고 나서, 잘못을 숨기는 것이 정말로 나를 지키는 일인지 생각해보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살망시키지 않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다른 누군가를 가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완벽한 답은 없지만, 적어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태도가 첫걸음이 아닐까.《친밀한 가해자》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기며, 스스로를 외면하지 않는 선택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엄마는 어떤 상황이든 다 이해해 주는 아들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 말이 사람을 얼마나 짓누르는지 알까. 제 속에 어떤 감정들이 쌓여 왔는지, 엄마는 하나도 모른다. - P48
"여보, 인생을 도화지라고 치잖아? 그럼 채원이는 까만 도화지에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가 이제 와서 채원이한테 희 도화지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채원이가 원래 까만 도화지라면 흰 크레파스로 그림을 완성하게 해 주면 되잖아." - P54
"나한텐 실수지만 다친 사람한텐 실수가 아니잖아. 실수라고 해서 그게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다고 백 번 빌어도 그 사람 상처는 안 없어지잖아. 아무리 실수였어도 그 사람한테 용서 빌고 떳떳이 죗값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안 그러면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될 것 같아."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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