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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시스터스
코코 멜러스 지음, 심연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클하서포터즈1기 #협찬

이성적인 엘리트 변호사인 첫째 에이버리, 세계 챔피언급 복서였던 둘째 보니, 자유분방한 모델 넷째 러키. 세 자매는 겉보기엔 모두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직업이 사실 각자가 슬픔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도피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에이버리는 완벽한 통제로, 보니는 육체적 고통으로, 러키는 끝없는 파티와 약물로 니키의 부재를 잊으려 했다. 이들의 결함과 불완전함은 상실의 무게를 선명하게 보여주어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숨기고,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들이 보여주었다.
니키는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던 존재였다. 그래서 니키의 죽음보다 더 마음 아팠던 것은, 남겨진 세 자매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보다 같은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를 피했다. 니키 없이 함께 있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같은 상실을 겪은 이들이 오히려 더 멀어지는 아이러니. 그들의 얼굴에서 자신의 고통이 반사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서로를 외면하는 모습은 너무나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처가 때로는 함께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 참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에이버리, 보니, 러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니키를 애도하고 기억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대신,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며 버티려 했고, 그 결과 이들은 더 깊은 혼란과 고통에 빠져들고 말았다. 세 자매의 서로 다른 반응을 지켜보며 나는 깨달았다. 애도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같은 사건도 각자의 삶 안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파문을 일으킨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선택한 방법들일 뿐이었다. 그러던 이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을 때,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서 무너졌는지 마주하게 되었다. 니키의 방에 남겨진 물건들, 함께했던 기억들이 세 자매를 다시 하나로 모았다.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과정이었다. 세 자매가 자신의 고통과 싸우는 모습, 서로 미워하면서도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관계의 복잡함,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묵묵히 계속되는 일상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이 이야기를 가득 채웠다.
상실 이후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때로는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말이다. 이 책은 그 여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름답지만 지저분하고, 고통스럽지만 희망적인 모습 그대로를 말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느꼈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한 날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되었다.
자매는 친구가 아니다. 원초적이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자매라는 관계를 지극히 평범하고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친구라는 관계로 줄여버리려는 욕망을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으리. 그런데도 친구란 말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수단으로 줄기차게,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예요. 내 남편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랍니다. 아니라니까. 자매란 같은 자궁에서 손톱을 기르고, 동일한 산도를 통해서 밀려 나오는 존재라서 친구와 같을 수가 없다고. 자매는 서로를 선택하지도 않고, 서로를 알아가는 은밀한 기간 따위를 갖지도 않는다고. 아예 처음부터 서로의 일부가 된단 말이다. 탯줄을 떠올려보자. 질기고 구불구불하며 볼품없지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 아니던가. 그걸 화사한 색실로 엮은 우정 팔찌와 비교해 보라. 그게 바로 자매와 친구의 차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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