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올리브에게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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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제본서평단 #협찬


<나나 올리브에게>는 전쟁이라는 무겁고 슬픈 주제를 다루면서도 절망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그 속에서도 피어난 인간의 따뜻함, 서로를 지탱하는 연대의 힘, 그리고 끝내 전해지는 진심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이야기는 '코흘리개'가 나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당시 올리브나무 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조금씩 드러냈다. 직접적인 설명 대신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감정을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관계와 마음을 더욱 진솔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중간에 삽입된 그림들은 글로만 상상하던 올리브나무 집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나나와 얼룩무늬 개, 올리브나무 집을 찾아오는 이들의 일상을 담은 일러스트들은 텍스트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전달하여 자연스럽게 몰입되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전쟁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폭격 소리가 들려도 울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들어 온 소리였으니까. 남자 어른들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군인들이 와 총을 쥐여 주고 데려갔다고 했다. (p.23)


이 책은 전쟁의 모습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도, 그 무게를 또렷하게 전달했다. 과장하거나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 절제된 어조가 역설적으로 전쟁의 일상화가 가져온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절망 속에서, 올리브나무 집과 나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던 흑백의 세상에 색을 선물했다. 문기둥에 새겨진 키 눈금처럼, 이 공간은 누군가의 성장과 기억이 깃든 '우리 집'이 되었고, 그 안에서 나눈 시간과 온기는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었다.


책을 덮으며,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와 나눈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진심은 총성과 폭격보다도 오래 남아,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 이야기를 떠울리면, 전쟁의 두려움보다 끝내 사라지지 않았던 따뜻함과 희망의 감각이 더 오래 남았다.


주머니칼은 접었다 펼 때마다 녹이 슬어 뻑뻑했다. 한때 아꼈던 물건이 이렇게 되도록 처박아 둔 것은 나였다. 내 기억도 이렇게 녹이 슬어 있는 것만 같았다. - P18

서운해하지는 마세요. 물건들에게도 계절이 있다면,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온 것뿐이에요. - P69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슬픔을 안고 있어요. 그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해요. 가끔은 슬픔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그만 잠겨 버리고 말 것 같을 때, 내 옆에 나처럼 턱밑까지 차오른 슬픔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아, 아직 괜찮구나, 하고 따라서 헤엄을 쳐요. 헤엄치는 나를 보고 또 다른 누군가 역시 헤엄을 치겠지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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