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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맛
다리아 라벨 지음, 정해영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클하서포터즈1기 #협찬

음식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한다는 설정이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각각의 요리는 한 사람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음식은 사랑과 기억의 언어였다. 특히 음식의 맛 표현이 너무나도 섬세하고 디테일해서 읽는 내내 군침이 돌 정도였다. 마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각각의 향과 맛이 살아나는 듯했다.
뉴욕 레스토랑의 분주한 주방과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들이 생생하게 등장하며, 콘스탄틴이 재현한 끝맛은 고인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그들을 현실로 불러냈다. 처음에는 그리운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시작되었던 일이, 점점 자신처럼 소중한 누군가를 다시 한번 만나게 해주고 싶은 바람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복합적인 상황이 전개되면서 그의 능력은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숙명처럼 변모했고, 이 과정이 깊이 있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심리 변화를 따라가며, 선한 의도가 때로는 예상치 못한 무게를 동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맛있다"고 극찬했듯, 이 소설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풍미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맛은 단순히 달콤하거나 쓴 것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따뜻하면서도 슬프고,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다. 음식과 기억, 애도의 감정을 섬세하게 엮어내며 죽음을 다루되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판타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별이라는 보편적 경험을 다루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울림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떠나보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전하지 못한 말들에 대한 후회와 남겨진 이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옅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그리움이 어떤 선택을 낳고, 집착과 슬픔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게 보여주었다. 때로는 아파하면서도 보내주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일 수 있음을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미처 보내주지 못한 관계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놓아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나의 끝맛은 어떤 맛일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삶에서 가장 의미 있고 기억하고 싶은 맛은 무엇일까? 같은 음식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기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책을 덮으면서 나만의 '끝맛'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눈 평범한 한 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끝맛은 무엇일지 떠올려 보았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어 할 맛은 무엇일까? 그 질문 앞에서 문득,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시간들이 훗날 누군가의 끝맛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아직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음식과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가 맛을 보는 동안 주변 공기가 멈춘 듯했다.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았고, 죽은 자들의 맛이 방 안에 있는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진짜처럼,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 P29
"하지만 보내주는 게 나를 잊는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냥 그 기억 때문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다는 거지." - P59
어떤 음식이 위대한 이유는 손가락의 지문만큼이나 개인적이었다. 어쩌면 그게 바로 핵심이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왜 먹느냐가 중요했다. - P172
"슬픔은 남은 음식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담아 네 가지 코스의 요리를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한 입밖에 먹지 않은 것과 같죠. 그래서 차마 버릴 수 없는 남은 음식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돼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냉장고 안으로 밀어 넣어 결국 썩히거나, 아니면 혼자 억지로 다 먹고 탈이 나는 것 뿐이에요." - P246
레시피는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그들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었다. 레시피는 그들이 떠난 뒤 다른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다시 불러와 가까이 두는 방법이었다. 죽었어도 진정으로 죽지는 않는 방법이었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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