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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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래빗홀'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래빗홀미스터리앰배서더 #도서협찬

《통역사》의 표지에 그려진 화려한 네온사인과 대비되는 여신, '차미바트'의 고요한 표정은 신비로우면서도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읽기 전부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통역'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감출 수도 있는 힘을 지닌다는 설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생소한 네팔의 문화와 신앙, 그리고 여신이 살인 사건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 낯선 조합이 만들어낼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겨 보았다.


"살인자의 말을 들은 그대로 전할 가치가 있을까요?"

재만이 도화에게 던진 이 질문을 통해 증거와 자백이 확실한 상황에서 피고인의 변명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과연 정의인지, 아니면 명백한 범죄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돕는 것이 정의인지 잠시 멈춰 생각해보았다. 단어 하나로, 문장 하나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도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보통 통역을 단순히 '말을 옮기는 행위'로만 생각하지만, 이 소설은 통역이 진실과 권력, 문화적 맥락까지 전달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강력한 행위임을 보여주었다. 즉, 통역은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서 한 문장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망치기도 할 수 있다. 도화가 재만의 의뢰를 받고 법정에서 차미바트에게 허위통역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통역이라는 행위가 가진 책임과 번역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왜곡의 무게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떠한 진실을 선택할 것인지를 《통역사》는 묵직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보여주었다. 책에서 도화가 차미바트의 증언을 좇을수록 드러나는 것은, '확실하다'고 믿었던 진실이 실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왜곡되기 쉬운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증거와 자백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명백하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진실일까? 언어의 장벽 너머에, 문화적 차이 너머에, 우리가 보지 못한 또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돌아보았다.


또한 낯선 네팔의 문화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전반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네팔에서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받았던 쿠마리가 왜 대한민국에서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었는지, 그녀가 법정에서 반복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사건 전개가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가며, 각 장면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져 더욱 몰입되었다. 그리고 '여신', '쿠마리', '제3의 눈', '파란남자'와 같은 낯선 단어들이 만들어낸 문화적 이질감은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살인사건과 네팔의 신앙, 그리고 도화의 선택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인간과 사회, 언어의 관계가 진실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왜 하필 나비가 보라색이죠?"
"멍들면 보랏빛이 되잖아요. 잠시 멍든 거지, 망가진 건 아니라는 의미예요."
도화는 보라색 나비 로고를 슬쩍 만져보았다. 차가웠다.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이 기묘한 상황을 설명해줄 사람은 차미바트뿐이었다. 묻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이다. - P72

어쩌면 자신의 불행에 집착하는 동안 옆을 볼 힘을 잃었는지 모른다. - P105

자본주의에 찌든 한국인은 불가촉천민보다 못했다. 돈만 알고 교만하고 서로를 속이는 저열함. 그렇게 생각해야만 이 세계에서 무방비로 꽂히는 모욕을 견딜 수 있었다. - P172

하지만 완고한 성도 오랜 시간 뚫어지게 바라본 자에겐 틈이 보일 수 있다. - P220

"나에게는 여러 말이 들릴 때가 있었어요. 옳은 말, 멋진 말, 틀린 말, 쓰레기 같은 말, 멍청한 말... 그때 나는 옳은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들었어야 했던 말은 ‘바다가 보고 싶어요‘ 그거였어. 텔레비전에서 당신 말을 들었어요. 바다가 보고 싶다는 그 말. 이번에는 그 말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게 답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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