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먼 이름에게 소설의 첫 만남 36
길상효 지음, 신은정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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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간의 세상에 왔는가 

이름을 찾아, 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

뒷 표지에 적힌 짧지만 묵직한 질문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우리 곁의 작은 늑대들’이라는 표현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반려동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과거, 그리고 그 존재가 인간 곁에 머물게 된 이유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 몹시 궁금해졌다.


'나의 먼 이름에게'는 자유와 길들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다가, 처음으로 인간 곁에 머물기를 택한 늑대의 오래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 '나'는 생애 처음으로 배불리 밥을 먹고, 깊고 평안한 잠에 빠진다. 낯설지만 따뜻한 인간의 손길, 그리고 얼굴을 비비며 안아주는 온기에 조금씩 마음이 열린다. 하지만 그 애정 속에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우리는 어쩌다 인간의 세상에 왔는가?'라는 질문이 맴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동족의 도움을 받아 빛의 구덩이로 몸을 던지고, 무리와 함께 생존을 위해 사냥하며 살아갔던 고대 늑대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그 여정 속에서 '나'는 자유와 본능의 세계에 남을지, 인간과의 유대를 택할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 작품의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개(늑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동물들이 느끼는 감각, 주변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는 섬세한 묘사들이 인상 깊고 사실적이어서, 마치 실제 동물의 본능을 엿보는 듯한 신기한 몰입감을 경험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앞으로는 내 곁에 있는 작은 늑대들에게 더 잘해줘야겠다.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눈을 맞추고, 다가오는 그 순간들이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나를 믿고 받아들인 그들의 선택이라는 걸 알기에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인간의 세상. 그랬다. 어디를 가나 인간의 세상이었고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인간에게 달려 있었다. - P26

밤이 암흑처럼 찾아왔다. 밤하늘에 알알이 박혀 빛나는 것들은 언제 봐도 가슴이 울렁거릴 만큼 신비로웠다. 또렷한 시각, 그리고 그보다 훨씬 강력한 후각으로 감지되는 동족의 존재보다도 나를 더욱 안심시키는 것은 나를 품는 동시에 위협하는 끝모를 이 공간, 그래서 늘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루하루를 악착같이 살아가게 하는 대지였다. - P43

얼마 전까지 대지의 삶을 치열히 살아 낸 자의 마지막 숨이 살아갈 자들의 숨을 데우고 있었다. - P45

아버지는 언젠가 그 날카로운 것이 우리를 향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앞발에 다른 무엇이 쥐일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두려움을 품은 자는 강하고 완고했다. - P50

그들의 조상이 우리 조상에게 배웠듯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뛰어난 앞발을 가졌다. 우리의 앞발과 다르게, 우리의 앞발보다 멀리 뻗어 갈 수 있는. 우리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코와 눈,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고.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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