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짜 실버 힙’이라는 표현도 낯설었고, ‘품위 따윈 던져버린다’는 말은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나이 들어서도 멋지고 우아하게 사는 것이 좋은 거 아닌가? 그런 궁금증을 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스릴 넘치는 추격전이다. 경찰차가 한 대의 소형 버스를 뒤쫓고 있고, 그 안에는 70대 노인부터 5세 어린이까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함께 타고 있다. 황당하고도 의문 가득한 장면이 묘하게 끌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야기는 곧 ‘3개월 전’으로 돌아가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배경은 영국 런던의 한 작은 동네에 위치한 만델 복지관. 낡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이곳은 노인들과 어린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데 사교 클럽의 첫 모임 도중 천장이 무너지고, 한 노인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시의회는 복지센터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초호화 아파트 단지를 세우기로 결정한다. 복지관이 사라지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된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대프니’다.

70번째 생일 아침, 자신이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그녀는 갑작스레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만델 복지관의 노인 사교 클럽에 가입한다. 그녀는 일흔이라는 나이에도 당당하고 유쾌하게 복지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선다. 함께 싸우는 이들은 사교 클럽의 멤버 아트와 윌리엄, 클럽 운영을 맡은 리디아, 10대 미혼부 지기까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세대를 넘어 연대하며, 복지관을 지키기 위한 작지만 강력한 저항을 시작한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또한, 책을 읽으면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가 떠올랐다. 책에서는 각 인물들이 자신의 시점에서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들은 삶의 굴곡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늦었지만 다시 시작할 용기를 냈다. 인생은 결국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반에 유쾌하고도 따뜻하게 흐르는 듯 했다. 아직 20대인 나는 노년의 삶을 온전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난 그 시간은 낯설지 않았다. 외로움과 불안, 관계에 대한 갈망은 지금의 나 또한 자주 마주하는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내 삶과 노년에 대해 곱씹어보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늦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웃고, 울고, 사랑하며 살아도 늦지 않았다는 따뜻한 응원을 건네는 듯 했다. 결국 인생이란, 겉모습의 품위나 체면보다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는게 아닐까?

이 책은 ‘진짜 힙함’이 무엇인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 글은 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가제본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당신은 텐트 같은 옷에 파묻혀 있어요. 세상을 피해 숨어있는 사람처럼. 그 멋진 곡선을 강조해야 해요!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전혀 몰랐다가 5년 뒤에 사진을 보고서야 알게 된다면 웃기지 않겠어요? 날 믿어요. 내가 볼 때 당신은 엄청나게 멋진 사람이에요. 이번에는 디올 의상을 입어봅시다. 디올은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거장이었죠. 패션은 시시한게 아니에요. 갑옷이에요. 디올을 입으면 당신은 세상과 맞설 수 있어요. 보여요?" - P2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