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사랑 오늘의 젊은 문학 8
박유경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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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개인적으로도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위기, 상실과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다정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각 단편들이 왜 한 소설집에 묶였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 그저 현실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담아낸 것 같고, 침체되는 분위기로 마무리 되는 터라 한 편을 읽으면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천천히 읽어갔다.

태어나기 전에는 우주와 연결된 에너지였지만, 태어나면서 단절되어 한 명의 단독자로서 살아가는 인간.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냐는 질문에는 태어나기 전 연결 상태에서, 태어나면서 각 개인으로 단절,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그 단독자끼리의 연결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고독과 외로움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감정이며, 나만 느끼는 슬픈 감정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단절된 개인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을, 작가는 "다정함"이라고 본다. 마지막 순간에 다시 만나게 되는 친구(떠오르는 빛으로), 자신과 비슷한 기분으로 대피할 공간이 필요한 여덟 명쯤의 사람(가장 낮은 자리), 본인과 어딘가 비슷해 보이는, 아직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남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던 강아지(여분의 사랑), 실수는 괜찮다며 나쁜 생각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검은 일) 등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주인공들의 곁에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 주변에도 존재하는 다정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고, 나도 다정한 사람으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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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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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는 내 몸이 아니라 그냥 나야.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존재야. (65p)

이 소설의 소개글에서 여성의 삶이 어떻게 '몸으로 환원되는지에 대해 쓴 소설이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 부분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존재가 되지 못하고 '~한 몸'으로 평가되는가? '이혼한 여자의 몸'이 란 어떤 몸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초입에서 '나'는 어머니 세대와도 다르고, 90년대 이후 생들과도 다른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서 살아왔다고 하지만, 결국은 동시대 안에서도 개인은 개인의 가치관, 개인의 선호, 개인의 각기 다른 몸을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이며 '공통된 여성의 몸‘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임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교적 짧은 글이라 하루만에도 단숨에 읽을 수 있었고, 자기 고백의 형식이라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 자체로도 추천하지만 뒷부분의 해설이 이 소설을 잘 파악하고 쓰인 글이고 깊이 생각할 부분을 더 얹어주는 것 같아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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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돕는 여자들
이혜미 지음 / 부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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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를 도운 여자'는 누구인가요?]

책을 읽어 나가면서 모든 인터뷰의 공통 질문인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짧게만 생각해봐도 학창시절, 대학시절, 첫 직장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수많은 여자들이 생각났다. 특히 여대를 다녔던지라, 이런 이슈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문제의식도 느꼈는데 그때마다 함께 목소리를 내던 대학 학우들이 많이 떠올랐다.

인터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전수연 변호사님의 답변이었는데, 처음에는 인터뷰 제목만 보고 난민을 돕는 일이 어떻게 다른 여성을 돕는 일이 되는지 의문이 있었다. 결국엔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부조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나도 어느 부분에서는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기에 서로를 연대하고 도와야 한다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인터뷰집이라 짧은 문단 위주로 구성된 대화 형식이니 읽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분 한분의 인터뷰가 저마다의 깊이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어떤 문단은 두 번씩도 읽어보며 나는 어떤 의견인지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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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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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인 '민환이‘를 보면 조선만 '에놀라 홈즈'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소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이어저 오던 '공녀제도'에 집중하여 공녀로 끌려가는 소녀들이 주인공인 역사적 내용이 많이 들어가는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는 역사적 사건에 치중하여 사건 자체를 다루기 보다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하위의 사건(공녀로 직접 끌려가는 주인공이 아닌, 끌려가는 소녀들을 찾아 나서는 탐정 주인공)을 주목하며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되려 더 흥미롭게 느껴졌고, 비극적 역사를 콘텐츠로 다룰 때 꼭 진지하고 슬프게만 다가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또,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니 만큼 캐릭터 설정도 실제 기록에 유사하게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시대상을 많이 담은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성 탐정 이라는 당시에는 거의 없었을 캐릭터를 잡고, 거기에 작가님과 동생분의 잠깐 소원했던 시기의 모습을 담고, 작가님 아버님의 고향인 제주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작가님의 이야기를 많이 넣었다는 것도 신선했다. 맨 처음 '한국 독자들에게' 페이지에서, "지금 제가 쓰는 책들은 전부 한국 역사에 바치는 러브레터인 셈인데요."라고 한 것처럼 캐나다에서 대부분의 삶을 사신 작가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설정과 스토리라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읽은 시기에 우연히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소설에도 등장하는 장소를 가보기도 했는데, 특히 곶자왈에 갔을 때는 여기서 민환이와 민매월이 말을 타고 혹은 직접 두 디리로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더 몰입이 잘 되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소설의 배경이 조선시대 제주도라는 점인데, 가독성을 위해 제주 방언은 꼭 필요한 일부에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표준어로 대체하였다고 하지만 각주만 잘 달아 설명해두었다면 오히려 제주 방언을 그대로 살리는 게 몰입도 면에서는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조선시대 제주라는 것을 알고 보고 있는데 표준어와 제주 방언이 번갈아 등장하니 어떤 부분에서는 물입이 깨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외국서적의 번역에서 매번 등장하는 형식으로 문장 중간에 주인공의 독백을 안에 집어넣는 방식도,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보게 되니까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캐릭터와 사건은 이제껏 보지 못한 것들이라서 꽤 분량이 않은 책임에도 금방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나라의 암담함에도 도망치거나 숨지 않고 커다란 빛을 올곧게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 대신 싸우고 자유를 쟁취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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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격 - 필연의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한 방법들에 관하여
케이티 엥겔하트 지음, 소슬기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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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선택할 때 기대했던 바는 안락사(의사조력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관련법규의 맹점을 파악하는 것에 있었고 기대를 만족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안락서 허용 여부에 대해 찬반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은 아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안락사 찬반에 대한 양측 입장을 이론적으로 다루는 부분도 비중이 있는 편이지만, 대체로 실제 삶에서 안락사를 결정하고 고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양쪽의 의견을 고루 볼 수 있고, 실제 조력을 가해야 하는 쪽의 입장도 들을 수 있어서 풍부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의사조력사를 지지하는 입장인데, 그간 법학 강의에서 안락사를 다룰 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스스로 원치 않는 약자들이 가장 먼저 안락사의 대상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했듯 실상은 의사조력사에 사용되는 약이 점점 비싸져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은 그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자본의 논리가 죽음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이 스스로의 삶에서 느끼는존엄성을 몇 가지 불분명한 기준을 들어 의사라는 타인이 판단하고 삶의 종결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의사조력사의 전세계적 연대표와 관련 문헌들을 확인하면서 읽을 수 있어서 천천히 정독하며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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