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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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과 호랑, 두 인간의 사랑 이야기. 인간 이름이 특이하다. 두 인간을 둘러싼 곤충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버들'은 한여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내리 자는 버들잎벌레의 생체리듬과 닮았다 하여, '호랑'은 온몸에 털이 수북이 난 모양이 마치 배 둘레에 털이 빽빽이 난 호랑꽃무지 같다고 하여. 이 설명을 읽고 나서 바로 버들잎벌레와 호랑꽃무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귀엽다. 두 인간 곁에서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함께 살아가며, 둘의 사랑을 관찰하는 수많은 곤충이 이야기 곳곳에서 나온다. 꼭 사방에서 곤충들의 노랫소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등장하는 곤충을 하나하나 검색해 가며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환희의 책>은 곤충의 눈으로 두 인간이 사랑에 빠져들고, 욕망하고, 불안해하고, 상처받으며 관계를 맺고 허물어가는 과정을 계절에 따라 관찰한 이야기다. 곤충들은 인간을 '두발이엄지'라 칭한다. 벌레를 잡으려고 발달한 엄지를 인간 신체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기에 곤충들은 그렇게 부른다. 곤충의 시각이 꽤 흥미롭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은 나도 곤충이 된다. 곤충의 시각으로 인간의 삶을 함께 엿보며 나와 다른 존재를 알아가는 경험. 

우리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고 늘 다른 것으로 흐른다. 물방개와 물땅땅이는 두꺼비에게로 흘러 구름이 되고, 왕풍뎅이와 산누에나방은 동고비에게로 흘러 빗방울이 된다. 꽃과 나무는 나비로 날개를 갖고, 땅과 바위는 벼룩의 도움으로 점프한다. 느낄 수 있겠는가? 위가 들리고 밑이 빠지는 쾌감을, 삼키는 뜨거움과 씹히는 상쾌함을, 구름으로 응결되고 빗방울로 추락하는 기쁨을. 두발이엄지도 우리처럼 믿고 느끼는가?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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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하양 걷는사람 시인선 101
안현미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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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고받는다 받기 위해 준다 주기 위해 받는다 그것밖에 없다 그것밖에 없어서 즐겁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는다 헛소리 같지만 그것밖에 없다 튀어 오르고 튕겨 나간 건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공 같은 것 (...)


―안현미, 「탁구」(『미래의 하양 』, 걷는사람, 2024) 中에서


✏  하얀 탁구공이 가득한 표지를 열어 시집을 펼치면 시인의 말에도 탁구, 첫 시에도 탁구, 마지막 시에도 탁구가 있다.  탁구. 어떻게든 상대를 속여야 이기는 경기. 이기려면 라켓을 이리저리 돌려 공을 휘게 하고, 상대가 받지 못하도록 공을 탁구대 구석으로 보내야 하는데. 공을 날카롭게 찔러 넣을 때, 상대를 속일 때, 상대 속을 간파하고자 머리를 이리저리 굴릴 때, 알게 모르게 점점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주고받는다 받기 위해 준다 주기 위해 받는다' 깔끔한 랠리같은 이 말이 좋다. 단순하고 정직하다. 하양이다 하양. 어쩌다 '튀어 오르고 튕겨 나간' 공도 '끝까지 갔다가 돌아 오지 않는' 거라며 너그럽게 봐 주는 듯한 여유로운 마음도 좋고. 누군가와 말을, 마음을 주고 받을 때 잡생각 않고 곧이곧대로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레짐작하며 오해하는 일은 몹시 피곤.




(...) 주고받는다 받기 위해 준다 주기 위해 받는다 그것밖에 없다 그것밖에 없어서 즐겁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는다 헛소리 같지만 그것밖에 없다 튀어 오르고 튕겨 나간 건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공 같은 것 (...)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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