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면 언제 오나 - 전라도 강진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 민중자서전 1
김준수 글.그림 / 알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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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시절 때 까지만 하더라도 고향에서도 상엿소리가 났었다. 흰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종소리를 내며 무슨 소리인지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노래를 하면 가마꾼들이 장단을 맞춰 응대를 하고 흰 가마 뒤에는 대나무로 만든 깃발 여러 개가 따르고 그리고 가족들이 흐느끼며 걸어가는 모습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슬픔이 한 가득 밀려오곤 했다.

 

상엿소리를 하는 분은 동네에서 이장님이나 덕망 있는 어르신이 하는 줄만 알았고 일종의 장례형식중의 하나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상엿소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전문적인 상엿소리꾼이 있고, 그 의미가 깊고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전 민요로 전해져 온 상엿소리는 망자의 마지막 길이 황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이승에서의 이별을 덜 아쉽게 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제 그 역할을 하는 분들은 거의 없고 뒤를 이을 사람도 없다고 한다. 한때는 천대 받았던 직업이었지만 이제는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상엿소리를 36년째 이어오고 있는 분이 있다.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일본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지냈지만 해방이 된 후 가진 것 없이 한국으로 들어온 오충웅 옹은 가난한 집안 살림에도 가수의 꿈을 일찍부터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에 가출을 하여 악극단과 약장수를 전전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가수가 되고는 싶지만 배경도 돈도 없는 시절에 이렇게라도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십여 년을 타지에서 보내다 들어온 고향에서는 결혼도 하고 농사도 지어 보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탓에 손에 잡힐 리 없고 우연히 들은 상엿소리에 빠지게 된다. 결국 집요하게 쫒아 다니다 절대음감을 지닌 장점과 맞아 떨어져 마흔의 나이에 상엿소리꾼으로 변모하게 된다.

 

망자의 가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자신이 울다가 소리를 못하기도 하고, 호상일 경우에는 너무 슬프게 소리를 하지 않고, 이승에 있었을 때의 망자의 일대기를 기억하고 그 감정을 살려 소리를 해야 하는 오충웅 옹의 노고를 볼 때면 이별의 슬픔과 평안을 노래로 기원할 수 있는 내면의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래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많은 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 오충웅 옹의 삶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제는 장례문화마저 장례식장과 함께 간소화되어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간절히 살피기보다는 일종의 형식적인 절차와 같이 느껴져 씁쓸한 생각도 든다. 어릴 적 들었던 상엿소리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 장례문화에서 상엿소리의 부활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소중한 전통문화의 맥이 이어져 갔으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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