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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샤바누 ㅣ 사계절 1318 문고 33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 지음, 김민석 옮김 / 사계절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샤바누, 난생 처음으로 차파티에 카레를 곁들여 먹으면서 그대를 생각했어. 차파티,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이 즐겨먹는 밀떡구이. 지구촌 시대에 살다보니 그대 나라의 귀한 음식을 이곳 코레아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게 됐지. 이곳에 있는 한 요가 아쉬람에서 인도에 다녀온 요가 수행자들이 모여 차파티와 카레를 해 먹게 된 거야. 그대 이야기를 읽지 않고 갔더라면 차파티가 그대의 나라 파키스탄에서도 아주 중요한 먹을거리란 걸 생각지도 못했겠지?
재작년이던가, 그대의 나라에 큰 지진이 나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는 재앙이 있었지. 직접 가서 구호에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가 못 돼 우리가족이 알뜰살뜰 돼지저금통에 모은 15만원 정도를 구호기금으로 보냈는데, 그런 인연이 쌓여 아름다운 그대를 만나게 됐나 보다.
어린왕자는 서로 친해지는 걸 길들여진다고 했지. 샤바누 그대를 만나면서 촐리스탄 사막과 글루버드를 비롯한 낙타 친구들, 모래바람과 싸우며 살아가는 그대 가족들, 오아시스와 캬라반들에 길들여지는 즐거움을 누렸어. 21세기인 지금도 그대 가족처럼 사막에서 낙타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고 만나고 싶어.
못된 지주 나지르에게 당연한 항거를 했는데 그 이유만으로 그대 가족과 무라드 가족이 당해야 했던 끔찍한 고통, 그 사건의 결과로 맺어진 타협책이 그대를 나지르의 형인 늙은 정치인의 네 번째 부인으로 보내는 것으로 내려진 결정, 이런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오늘도 그대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재자 무샤라프의 민주인사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그대로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참 가슴이 답답해져 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그대 한 사람이 희생해 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은근한 강요를 보면서 가슴 아픔을 넘어 분노가 치솟는 걸 억누르면서 끝까지 읽었어.
강고하게 굳어진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택하고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역사는 수없는 예를 보여주고 있지. 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을 온몸으로 깨부수고 깨달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대 이모 샤르마 같은 이가 있어 역사는 고난 속에서도 진보하는 거겠지.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사막의 딸답게 샤르마 이모처럼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일구어가겠다는 의지를 벼르는 그대의 결심이 모랫바람 멎은 촐리스탄 사막의 밤별처럼 찬란하게 느껴져.
샤바누, 그대가 온 세상에 아직도 수없이 있을 또 다른 샤바누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빌게. 촐리스탄 유목민들의 토버엔 오늘 밤에도 맑은 별빛이 쏟아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