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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바이러스
진중권 지음 / 아웃사이더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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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진중권이가 딱 아흔 아홉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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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냄새
이충걸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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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의 끝머리를 장식하는 글이라던가 <GQ Korea>의 첫머리를 여는 이충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구사하는 은유가 정말 최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권으로 묶여진 그의 글을 연달아 읽다 보니 그 은유의 패턴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의 은유는 극한으로 치닫는 과잉 또는 상사를 통한 낯설음이었다. 패턴을 깨닫고 나니 다소의 신비감은 사라지는듯 하지만 그래도 그의 메타포는 여전히 멋지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슬픔의 냄새>라는 제목은 참 좋다. 후각이라는 것은 가장 동물적인 감각에 가깝다. 환상이나 환청이라는 것은 있어도 냄새의 오류는 적지 않은가. 게다가 후각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람의 감정을 뒤바꾸어 놓을수도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후각이라는 것은 외부의 충격을 고스란히 내부로 전달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취약한 기관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슬픔을 느끼면 코끝이 찡해지는데 어쩌면 슬픔이라는 것이 무취에 가까운 냄새가 있어서 코가 가장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런 글들을 한 권으로 묶는 것은 별로이다. 어쩐지 대형할인마트에서 파는-낱개로는 절대로 팔지 않는- 박스제품을 사야 하는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니까. 그냥 원래대로 잡지들의 한 귀퉁이에 한 편씩 실려 있는게 좋다. 이런 글들을 연달아 읽어서 일시적이나마 슬픔에 대한 불감증을 얻는 것은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닐것이라 생각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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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 주일 -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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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번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모 대기업을 다니다가 때려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대출신에 DB설계를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엔지니어다.

카프카는 관청직원으로 근무시간에 글을 쓰기도 했다고 하더만

요즘엔 그런 땡보직이 잘 없는가보다. 쓰려면 이렇게 때려치거나,

더 나아가 노트북 싸들고 떠나야(은희경) 가능할 만큼 말이다.

세상이 그전보다는 다양하고 복잡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 때려치고 쓴 글 치고는 왠지 허전하기 짝이 없더라.

그러니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뭔가를 쓴다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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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작가 노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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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60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 얇은 책이다. 작가 노트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말하자면 3권에 걸친 <미학 오디세이>의 성공에 대한 일종의 축하 세리머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권을 모두 읽은 사람이라면 부담없이 그 파티에 참석하여 단상에 선 그의 소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참가비는 3천원.

"고전적 미로의 구성은 간단하다. 하나의 길을 따라 계속가면 언젠가 중심에 도달하고, 거기서 뒤돌아 걸으면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근대적 미로는 다르다. 여기서는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서는 오직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입구도 출구도 없고, 시작도 긑도 없고, 그리하여 빠져나올 가능성도 없는 어떤 미로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런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탈근대적 미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노트에서 3권을 인용한 것을 다시 인용하다)

그가 좋아한다는 도서관 미로 놀이에 참여해보고자 했는데, 첫 갈래인 보드리야르부터 만만치가 않구나. 이런 놀이에서는 조급함이 가장 나쁘다...라고 위로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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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죽음
마이클 파렌티 지음, 이종인 옮김 / 무우수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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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장은 단순히 그동안 역사학자나 기득권층에게 인정받아온 키케로계열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무감각했던 굳은살을 파헤치고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인간 카이사르에게 반했는지는 몰라도-어쩌면 그때문이겠지만- 그의 생각이나 행동의 본질에 다다르는 데에는 소홀했다고 보여진다. 

2004년 한국에서의 진정한 '호민관'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기에는 최고다. 아무튼 이 작품은 퓰리처상을 줘야 한다(2004 퓰리처 후보작이다).

책 속에서...

그라쿠스 형제, 클로디우스, 카이사르 같은 사람들, 평등주의 원칙의 옹호자로서 과감히 나선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민중을 옹호하다가 자신의 목숨으로 최악의 희생을 치렀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이 대중을 위해 앞에 나선 것은 자기 인기와 권력 추구 등 자기를 높이기 위한 욕망만 작용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p.148)

로마 귀족이 생각하는 '공화정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귀족을 위한 자유였다. 겉보기에만 공공을 위해 헌신적이었고 실은 귀족계급의 모든 특권을 지키는 자유, 어떤 비요ㅗㅇ도 부담하지 않고 시민 사회의 모든 특혜를 누리는 자유, 다른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더욱더 부자가 되는 자유, 이런 것들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공화정의 자유였다. 그 어떤 공화정의 겉치레를 달고 있든, 귀족제도의 자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소수 귀족 중심의 금권정치였다. 이러한 무자비한 부유층의 자유는 오늘날까지도 온건한 경제적 민주주의를 차갑게 뿌리치고 있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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