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유토피아 - 에덴의 기억이나 예감이 없다면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이다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철학자이자 작가인 에밀 시오랑의 작품이다.


고국이 루마니아지만 모국어인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선택하면서 배반자라는 말도 듣기도 했지만, 그는 "내가 선택했던 언어가 나를 지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목에 유토피아가 들어가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환상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이나 예찬과 같은 저작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이라 당황스러웠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가 1950년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황폐해진 나라들의 재건과 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각 나라들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들을 겪으면서 냉소주의 아니면 허무주의적인 사상이 깊이 물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6개의 장으로 나눠진 작품은 한번 읽어서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번을 읽었어도 아직도 정확히 내용 파악을 못하고 있다.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는 멀리있는 친구에게 파리에서 보내는 편지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이다. 현 시대의 우리라면 자유주의 사회를 훨씬 더 동경하고 칭찬할 것 같지만 시오랑은 자유주의보다는 사회주의쪽에 더 마음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에서는 러시아의 제국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동로마 비잔틴제국이 멸망하고 모스크바는 동방정교를 계승하는 제3의 로마가 되었다.

러시아가 동방정교를 선택하고 가톨릭을 거부하면서 러시아의 발전은 지연되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러시아는 그들만의 유일성을 견고하게 만들고 점점 더 강대해질 것이라고 작가는 서술하고 있다.


[폭군들의 학교에서]는 폭군이 되려면 정신이 이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복자가 성공하는 한, 전진하는 한 그는 어떤 나쁜 짓도 할 수 있다. 여론이 용서한다.

살인을 언제 저자르는가,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권력의 정점에서 저지르는 범죄는 권위를 강화하고 신성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권력을 위해 살인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범죄일 뿐이다.

권력을 잡았다고 모든 것이 용서되고 무마될 수는 없는 것이다.


[원한의 오디세이아]는 악덕과 원한, 보복에 대한 내용이다.

작가는 선함보다는 악덕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든다고 쓰고 있는 듯하다.

"악덕 덕분에 일에 매달리며 훌륭하게 처신한다. 허수아비가 아닌 이상 악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 인간이 활동하고 생산하는 목적은 단 하나, 경쟁상대를 눌러버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토피아의 메커니즘]에서는 유토피아가 세계 종말과 결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는 작가는 유토피아에 매우 냉소적이다.

비극은 역사의 핵심이고 절정이다. 유토피아는 비극에 반대되며 위험한 이성주의와 인간적 순결주의가 합성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래 유토피아가 꿈과 희망속에서 그려진 한상의 세계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닌가?

억눌린 삶과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꿈꾸던 이상세계가 유토피아인데 그런 유토피아를 세계 종말론에 전염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항금기]는 성서의 에덴동산과 일치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고통의 초기 단계에서는 지상에서 황금기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거기서 기댈 곳을 구하며 집착한다. 구러나 고통이 심해질수록 황금기로부터 멀어지면서 고통 자체로 돌아가 집착한다. 유토피아적 체계를 설계한 원인이었던 고통이 이제 반기를 드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으며 유토피아는 헛된 환상을 다른 환상으로 바꾸었을 뿐이라고, 황금기의 전설이 우리가 꿈꾸는 영원한 현재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할까? 묻고 있다.


책을 여러번 읽었어도 아직도 내용 파악이 정확히 안되고 있다.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 지금 내가 사는 시대가 처한 상황이 많이 달라서 이해가 안되는 것일까?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