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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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거지가 교회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가슴 아픈 모양으로 태양이 떠올라, 흡사 빛으로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우겠다고 다짐하는 듯이, 간밤의 하나같이 차갑고 강고하던 어둠 속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속박돼 있던 나무와 땅과 하늘 그리고 짐승들과 인간들을 마침내 분리하여 풀어준다. 그러고는 패망하여 절망한 군대처럼 아직도 도주 중인 밤과 밤의 끔찍한 요소들이 하늘의 경계 너머로,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광경을 태양은 가만히 응시한다.





...누군가에게 확신을 불어넣고 그의 덧없는 실존을 온전한 존재로 고양시키는 기억은, 어떤 사태로부터 기억 자체의 질서에 따라 실마리를 끄집어내고 기억과 인생 사이의 거리를 단지 그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경직된 만족감으로써 무마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비로소 그는 모든 것을 훨씬 놀랍게 바라보게 되었는데, 얼마 안 있어 그는 벌써 어떤 기억을 소유한 자로서 그것에 집착하게 될 것이었다.





...길지도 않은 비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벽에는 금이 가고 창문과 문은 틀에서 이탈하고 굴뚝은 기울어져 무너지고 벽에 박은 못은 빠져 걸어놓았던 거울이 깨지고 마지막에는 엉망으로 망가진 건물이 침수된 배처럼 가라앉도록. 그리하여 영락한 인간이 비와 땅을 상대로 벌이는 가련한 싸움의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려는 듯이. 지붕은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는구덩이를더깊게팠지만 구덩이는자꾸만허물어졌다 파고또파도 소용 이없었다그가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기계실창가에 앉아 지금이저녁무렵인지아니면새벽인지 궁금해하고있었다희미하게밝은기운이끝도없이이어졌다 그는앉아서어리둥절해하고있었다 바깥은아무런변화가없었다 저녁이깊어가지도아침이오지도않았다 그저끝없이아침인지저녁인지어스름만이어지고있었다…




...“잘 알아둬라. 인생의 비밀은 농담에 있다는 걸.” 그가 엄숙하게 말했다. “일은 어렵게 시작해서 나쁘게 끝난단다. 중간에 일어나는 일은 다 좋은 법이야. 네가 걱정할 건 마지막 순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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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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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죽음 -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죽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 틈새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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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다닐 때 생태학 교수님은 살아 있는 생명이 많은 곳에는 죽음도 많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사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생태계는 변함이 없으므로,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생명은 불멸의 존재예요. 개체가 대체될 뿐이지 생태계는 전혀 변치 않아요. 따라서 죽음은 없어요. 혁신이 있을 뿐이지요. 생물 시스템은 개체보다는 훨씬 더 우위에 있어요.




...자연에서는 사고를 당하거나, 감염되거나, 기생충 때문에, 굶어서, 잡아먹혀서 죽는 거죠. 빠르거나 늦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 다 시험관이나 컵처럼 떨어져 깨지게 되어 있어요. 자연에서는 만성 질환이 없어요. 이런 병이 생길 정도의 나이까지 가질 못하니까요. 이런 것은 인간에게만 있어요. 대부분의 만성 질환은 60세 이후에 발생하는데, 심혈관, 호흡기, 신경 계통의 퇴화 과정과 관련이 있어요. 자연에서는 아무도 늙을 때까지 살지 못하기 때문에 만성 질환이라는 것이 없어요.




...길들인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인간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죠?”
“길들였다는 것 특유의 보살핌 때문에 모든 컵이 깨졌을 때도 살 수 있지요. 다시 말해 죽는 것이 당연한 그런 순간에도 말이에요. 조상들의 특성을 다 축적해 놓은 유전자들, 특히나 나이에 비해 늦게 발현되는 유전자들이 추적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활성화되는 거예요. 자연 선택의 눈에 띄지 않은 유전자들의 발현을 우리는 늙었다고 하는 거죠. 이런 현상은 우리 인간이나 우리가 길들인 동물만 겪고 있는 것이고요.




... ‘젊어서는 뼈를 단단하게 석회화시키는 호르몬인 칼시토닌을 만드는 유전자를 한번 상상해 봅시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늙어서는 관상동맥의 석회화(동맥 경화)를 유발하지요.’”
“여기에서 길항 작용이란 말이 나오는군요.”
“젊어서 지나치게 풍요를 즐긴 대가를 치르는 거죠.”
“같은 유전자 안에 생명의 동인과 죽음의 동인이 함께 머무는 것이군요.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 고유의 두 가지 기본 동인이 말이에요.”
“자연 선택에서는 양 끝에서 서로 당기는 상반된 두 가지 힘이 작용해요. 첫 번째 힘은 두 번째 번식기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르니까 가능하면 처음에 많은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두 번째 힘은 두 번째 해가 있으니까 첫 번째 해에 죽는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요.”
“균형을 잡아야겠군요.”
“자연 선택은 바로 이 균형점에 접근하고 있어요.





...아프리카 북부에서 이슬람교도가 죽자, 매장할 준비를 하던 울라마가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만일 죽음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죽음을 피하는 데 평생을 다 바칠 것입니다.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을 테고, 무엇을 시도하거나 무엇에 맞서 싸우지도 않을 겁니다. 물론 무엇을 발명하려고 들지도, 건설하지도 않을 테고요. 생명은 끝없이 이어지는 회복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들이여. 삶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선물을 준 신에게 감사합시다. 낮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밤이 있으며,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침묵이 있으며, 건강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병이 있으며, 평화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전쟁이 있는 것입니다. 휴식과 기쁨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피곤과 고통을 준 신에게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신에게 감사합시다. 신의 지혜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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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앉기를 권함 - 스즈키 슌류, 마지막 가르침
스즈키 슌류 지음, 김문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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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식탁을 치워야 하고, 식탁이 깨끗할 때조차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또 하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식탁이 더럽다고 생각해서 깨끗이 치운다면, 그 마음이 더러운 겁니다. 뭔가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더럽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더럽다’와 ‘깨끗하다’, 아니면 ‘옳다’와 ‘그르다’를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분별을 거두는 것입니다. 깨끗이 치우되 그게 더러워서 치우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사는 동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치운다는 것이지요.




...돌 위에는 풀을 심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돌처럼 되어서 그 위에 좋지 않은 것이 자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선이나 악은 불성 위에서 자라날 수 없습니다. 불성은 단단하고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은 망상과 같고, 망상은 여러분의 정신에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늘로 돌을 꿰뚫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침찰針札’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늘로 강철을 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우리 식으로 수행할 때 필요한 정신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현자들의 형상을 마음속에 품어야만 그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자들의 진짜 존재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때조차 그렇습니다...여러분은 책 안에 위대한 현자를 담고 그 책을 책장에 꽂아둡니다. 만약 그들을 책장에 꽂아두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무아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존재하되, 자아로서가 아닌 ‘우리 자체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수행하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누구인지, 사물이 무엇인지를 진정한 의미에서 깨닫는 것입니다. 그 방석 위에서 여러분이 앉아 있는 방식은 사물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존재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
바람이 멈출 때, 꽃은 떨어진다.
새가 노래할 때, 산은 더 고요해진다.

바람이 멈추더라도 여전히 꽃은 떨어집니다. 바람이 없으면 꽃은 가만히 있어야 하겠지만, 바람이 없어도 여전히 꽃이 떨어집니다. 새가 노래하면 조용하거나 고요하지 않지만, 머나먼 산에서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산의 고요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 시는 ‘유有’와 ‘무無’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존재하거나 가끔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을 때 가끔은 존재합니다. 꽃이 떨어질 때는 바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바람이 존재하지 않아도 여전히 꽃은 떨어집니다. 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여러분은 바람이 불 때보다 바람의 존재를 더 크게 느낍니다. 새가 노래할 때 여러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보다 산속의 고요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진정한 ‘유’와 ‘무’의 감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앉아 있는 실질적인 수행을 강조하고, 어떻게 해야 매 순간 우리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지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저 앉는 것은 매 순간을 살아가는 일이며, 우리는 일상에 앉기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면이나 외면에서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지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일을 해야만 합니다. 실제 행동을 무시하고 다른 뭔가를 생각한다면 이는 진짜 수행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루지無漏智, 즉 새지 않는 지혜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는 구멍 뚫린 지혜, 새어 나가는 지혜입니다. 무루지는 구멍 없는 지혜를 의미하지만, 우리에게 구멍 없는 지혜는 그저 물속에 바구니를 담가놓은 것뿐입니다. 물속에 있는 동안에는 새어 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게 귀의이며, 우리가 좌선 수행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계율의 해석이자 좌선의 이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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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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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외할아버지가 내 이름의 뜻이 좋다고 칭찬하셨어. ‘비담박무이명지, 비녕정무이치원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명확히 할 수가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이를 수가 없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계자서에 나오는 말이야.”


시스템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언제나 현실적인 선택을 하죠. 두 가지 선택지가 앞에 있을 때 자기 윤리 기준을 위배하지만 않는다면 리스크가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에요. 다만 이 평범한 선택이 쌓이면 ‘악’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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