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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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의 여자는 행복이란 게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은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배운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린, 한때 알았다는 사실만 기억나는 외국어와 같았다.





..정상에 선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내려다보지 못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은 남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법이다. 실제로 고생해본 사람만이 어떤 일에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직감적으로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생기고 남보다 더 영리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돈은 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없을 때에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따라서 돈은 ‘자유’라는 거룩한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단념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분노가 솟구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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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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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전혀 몰랐다. 내가 똑똑해진다면, 내 마음속의 말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고, 복도에 서있는 저 소년들과 허먼 삼촌과 부모님도 모두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 스트라우스 박사님이 말한 뜻은 내가 그 모든 일들 때문에 감정이 상해서 마음에 병이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운명이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거인들이 아니라, 아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 모든 것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무섭다.



...외로움은 내게 글을 읽고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제는 기억들도 되살아나서 과거를 재발견하고, 내가 정말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혹시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 정도의 결과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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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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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작품이란 “그 책이 없다면 스스로 보지 못했을 것을 볼 수 있도록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기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밀란 쿤데라는 친절하게도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책을 읽을 때 독자가 실제로 읽는 것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책(속 문장)은 ‘나’를 잘 읽도록 돕는 광학기구일 뿐이고, 그 광학기구가 있어서 나는 ‘나’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것이 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외부만을 발견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나는 나의 내부가 발견되고 규정되는 걸 견디지 못한다. 발견이 곧 발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내부, 즉 ‘나’만 빼고 다 발견한다. 나는 ‘나’만 빼고 다 규정한다. ‘나’를 보는, 볼 수 있는 눈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신의 눈에 의해서(만) 발견된다. 그것은 세상의 끝에서만 가능하다. 세상의 끝에 이르기 전에 ‘나’는 결코 발견/발각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나’가 결코 시간/신의 눈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말이 곧 하나의 국어다. 한 사람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의 외국어이다. 세상에는 말을 하는 사람 수만큼의, 어쩌면 말해지는 상황만큼의 국어/외국어가 존재한다.




“차(찻잎)가 많으면 향기가 써서 맛이 떨어지며, 물이 많으면 색이 나지 않고 맛이 떨어진다.” 너무 빨리 마시면 맛이 나타나지 않고, 너무 늦으면 향을 잃는다.
  말에는 정신(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정신(생각)이 지나치면 찻잎이 너무 많은 차가 쓴맛을 내는 것처럼 부담스러워진다. 반대로 충분하지 못하면 색이 나지 않고 향도 나지 않는 차처럼 무미건조해진다.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겠다. 말 속에 생각이 잘 풀어져야 하지만 아예 생각이 담겨 있지 않아도 곤란하다. 균형 있게 잘 어울리지 않으면 문장은 알아듣기 어렵거나 하나 마나 한 것이 된다.





“신앙은 의심을 제거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 있는 하나의 요소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정복하는 용기다.”(폴 틸리히) 이념은 반대다. 이념은 의심하지 않는, 의심을 용납하지 않는, 의심이 끼어들 틈이 없는,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투철한, 무분별한 믿음의 체계이다. 이념은 투철한 확신을 가진 광신자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광신자들에 의해 막강해진다.




...우리 안의 존재가 우리에게 그처럼 낯선 것은 우리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고, 확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가 우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말을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수없이 자주, 이렇게 저렇게 표현을 바꿔가며, 거의 필사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끈질기게 한다....나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뿜어져나오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을 실현하며 살고 싶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다.



...시인 최승자는,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 다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앙드레 지드는 익숙한 세계에 안주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면, 또는 그대가 주위를 닮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걸으면 다리에 근육이 만들어지고, 근육이 만들어지면 걷는 데 유리하다. 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이 근육을 만드는 방법이 되는 셈이다. 걷기와 근육 생성은 서로에게 원인이고 결과다. 그러나 근육을 만들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 현상을 목적과 혼동할 필요가 없다.
  언제까지 걸을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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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역사 - 죽음은 어떻게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앤드루 도이그 지음, 석혜미 옮김 / 브론스테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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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패권 전쟁 - 미국과 중국이 촉발한 제2의 냉전
박종성 지음 / 지니의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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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수렴이나 사회적 합의 형성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건너뛰고, 엘리트 집단 내부에 절박한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국가적 총력전을 위한 정치적 의지를 사실상 ‘제조’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외부적인 체면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내부적으로는 AI 기술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한 위기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중국식 스푸트니크 모멘트의 핵심이었다.




...전 세계 물리적 데이터 수집 인프라의 70% 이상을 단 하나의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는 ‘구조적 현실’ 그 자체에 있다. 설령 DJI가 완벽하게 선량한 민간 기업이라 할지라도, 중국의 법률 체계 아래에서는 국가가 요구할 경우 데이터를 제공해야 할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결국 DJI의 사례는 피지컬 AI 시대의 패권 경쟁이 기술의 우위를 넘어, 데이터를 생성하는 ‘인프라’의 통제권을 둘러싼 싸움임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게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살아 있는 실험실’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을 부여함으로써, 이 경쟁의 규칙 자체를 바꾸고 있다. 자율주행 경쟁은 이제 순수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대리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유비테크의 등장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제조업의 패러다임이었던 ‘노동비용 차익거래Labor Arbitrage’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다...이제 경쟁의 규칙은 ‘누가 더 저렴한 노동력을 가졌는가’에서 ‘누가 더 효율적인 로봇을 가졌는가’로 바뀌고 있다. 유비테크가 이끄는 휴머노이드 혁명은 바로 그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는 상대의 강점(반도체 설계)을 힘으로 맞받아치는 대신, 경쟁의 무대를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곳으로 옮겨오는 일종의 지정학적 주짓수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 중앙 통제적 국가 시스템, 그리고 14억 인구 전체를 실시간 연구개발을 위한 ‘살아 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 ’로 활용하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기술이 상하이에서 산업화되거나 선전에서 하드웨어로 양산될 준비가 되었을 때쯤이면, 가장 근본적인 시장 위험과 기술 위험은 이미 베이징에서 국가가 떠안은 뒤다. 이는 조립 라인의 나머지 공정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효율적으로 만든다. 민간 자본과 기업들은 이미 검증된 길 위에서 속도와 규모의 경쟁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베이징이 수행하는 전략적 위험 제거의 핵심이다.





...국가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동원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업 금융과 산업 정책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어, 시장경제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재정적 화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이질적인 현상이다. 리스크는 개별 금융기관이 아닌 국가 전체가 흡수한다. 이러한 구조는 7년에서 10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해 수익을 내야 한다는 통상적인 압박에서 빅펀드를 해방시킨다.




...이러한 실패를 통해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단지 칩의 연산 속도를 끌어올린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엔비디아의 진정한 힘은 칩 자체의 성능뿐만 아니라, 거의 20년간 축적된 CUDA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깊이와 안정성에서 나온다. 딥시크는 이미 엔비디아가 제공하는 개발 환경에 맞춰 모든 훈련을 진행해 왔기에, 소프트웨어 스택 전체를 들어내야 하는 ‘대수술’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장경제에서는 과잉 생산이 가격 하락과 기업 파산이라는 자정 작용을 통해 해소되지만, 중국 모델은 국가 지원을 통해 이 메커니즘을 무력화시킨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압도적인 물량 공세로 전 세계 공급망을 중국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잉 생산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세계 시장 정복을 목표로 설계된 시스템의 의도된 결과물인 셈이다.





...중국이 지난 10년간 일관성 있게 추진해 온 국가 전략은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제2의 차이나 쇼크’라 불리는 과잉 생산과 ‘자동화 강요’라는 숙제를 안겼으며, ‘기술 분절화’를 통해 세계를 두 개의 블록으로 갈라놓았다. 설상가상으로 ‘군민융합’ 전략은 경제 효율을 명분으로 축적해 온 모든 기술과 데이터, 그리고 여러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언제든 군사적 목적을 위해 동원될 수 있는 근복적 문제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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