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부족함이 만들어 내는 선택과 행동의 비밀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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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정신을 사로잡는다. 배고픈 사람들이 오로지 음식만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결핍을 경험할 때마다 그 결핍에 흡수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때 정신은 충족되지 않은 그 필요를 자동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추구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그 필요는 허기를 달래 줄 음식이고, 바쁜 사람의 필요는 빨리 끝내야 하는 어떤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돈에 쪼들리는 사람의 필요는 이번 달 방세일 수 있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마음을 함께 나눌 동반자 의식이다. 결핍은 어떤 것을 매우 적게 가질 때의 불쾌함 그 이상이다. 결핍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결핍은 사람의 정신을 그 자신의 무게로 무겁게 짓누른다.




...시간이 부족할 때면 사람들은 그 남은 시간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어 낸다. 그게 업무의 성과이든 즐거움이든 간에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집중배당금focus dividend’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정신을 사로잡는 결핍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결과이다.




... 긴 터널 안에 들어가면 오로지 멀리서 빛을 발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의 모든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관심을 두는 대상만 보이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터널 시야 현상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소설가 수전 손택은 사진에 대한 글을 집필하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썼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틀을 만든다는 것이고, 틀을 만든다는 것은 (나머지 것들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터널링을 이런 인식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 결핍은 편익을 생성한다. 그래서 결핍의 순간에 사람들은 보다 더 생산적이다. 그러나 결핍은 대가를 요구한다. 터널 시야와 같은 편협한 관점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실제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까지도 무시하고 지워 버린다.




... 이런 심리적(정신적)인 회계라는 발상은 많은 함축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세금 환급금으로 받은 2,000달러를 소비하는 것과 주가 상승으로 발생한 수익 2,000달러를 소비하는 행태가 전혀 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경우에 모두 2,000달러만큼 부유해졌지만, 사람들은 이 두 개의 계좌를 (‘공돈 계정’ 대 ‘연금 계좌’라는) 독립된 것으로 인식하며, 이 두 개의 계좌에 속한 돈을 소비할 때 각각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효과에 덜 휘둘리는 경향을 보인다.





...설령 아무리 내일의 결핍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로지 추상적인 지식으로만 비칠 뿐이다. 그러니까, 느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의 정신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역폭 세금이다. 현재는 자동적으로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한다. 하지만 미래는 그렇지 않다. 미래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대역폭이 필요한데, 결핍이 이것에 세금을 부과한다. 결핍이 우리의 대역폭에 세금을 부과할 때 우리는 더욱 더 지금 당장의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미래에 제기될 필요성을 예측하려면 여러 가지 인지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현재의 유혹에 저항하려면 실행 제어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우리의 대역폭에 세금을 부과할 때 결핍은 현재에 집중하고, 그 결과 우리는 무언가를 (돈이든 시간이든) 빌리게 된다.





.... 돈이든 시간이든 간에 오늘의 자원이 미래의 자원에 비해서 정말로 더 큰 편익을 제공한다면 빌리는 게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터널에 갇혀 있을 때는 이 비용 편익 계산을 건너뛰고 무작정 빌리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결핍에 직면할 때 우리는 장기적으로 빌리는 것이 합리적일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도 빌린다.






...결핍의 덫에서 해방되려면 자원을 욕망보다 평균적으로 많이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커다란 충격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느슨함(혹은,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사회과학자들, 특히 경제학자들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기업은 수익이 불확실할 때 투자를 줄이고, 가계는 소득이 불확실할 때 소비를 억제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현상이다.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메일을 보내지도 않고 글을 쓰지도 않고 요리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운전도 하지 않는다. 이 날은 평온함, 고요함, 회복감처럼, 유대교도가 아닌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은 몇 년에 한 번 경험할 수 있을까 말까 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안식일은 최소 두 가지 이유에서 탁월한 무형의 발명품이다. 하나는 그 어떤 선택도 요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어떤 딜레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레이드오프도 없고, 그저 시간이 마냥 널려 있는 날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라는 안식일의 시간이 한 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온다는 점이다.




... 결핍을 보다 더 잘 관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결핍이 흔히 풍족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마감 기한 직전의 피 말리는 급박함은 보통 그보다 몇 주 전에 비효율적으로 낭비했던 넉넉한 시간에서 비롯된다. 농부는 특히 추수하기 직전 몇 달 동안 돈에 쪼들린다. 추수를 끝낸 직후 풍요롭던 몇 달 동안 돈을 현명하게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지식의 섬이 넓어짐에 따라 우리 무지의 해변 역시 넓어진다.
— 존 A. 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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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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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 더 비전 2030 - AI부터 생명공학까지, 오픈AI가 설계하는 미래
이재훈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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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는 인류에게 AGI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오히려 자신들이 먼저 개발함으로써 기술의 독점을 방지하고, 보다 공정하고 광범위한 분배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AI와 로봇이 생산을 담당하더라도, 그로 인한 소득은 이 기술을 소유한 소수의 기업과 개인에게 집중되며, AI 자체는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아무리 많은 부를 창출하더라도 그 부를 사용하는 주체가 사라진다면 자본주의는 소비 부재로 자멸할 수 있다. 부의 창출이 소비 없는 순환 고리로 변질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샘 올트먼이 지적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실험의 철학적 접근 방식에 있었다. 국가 주도 실험이 복지 효율성 측면에서 신중하게 설계된 반면, 올트먼의 실험은 기본소득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어쨌든 이 실험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본소득 제도가 반드시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은 아니며, 단지 철학적 이상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올트먼은 다음과 같은 미래 비전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
● AI는 인간의 노동 부담을 줄이고,
● 기본소득은 인간의 선택권을 회복시키며,
● 생명공학은 인류를 건강하고 오래 살게 만든다.
이 세 축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인류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샘 올트먼이 말하는 ‘지속 가능한 인류’란 단지 지구 환경을 보존하거나 재생 에너지를 확보하자는 수준의 일반적 담론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보다는 인간 개개인이 존엄하게, 의미 있게,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의 핵심은 기술에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다. 이는 오픈AI의 공동 창립자이자 테슬라의 전 AI 리더인 컴퓨터 과학자 안드레이 카르파티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개발자가 구체적인 프로그래밍 지식 없이 ‘느낌Vibe’만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코딩 방식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코딩에서는 개발자가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과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코드로 표현해야 했지만, 바이브 코딩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자연어로 설명하기만 하면 AI가 이를 해석해 실행 가능한 코드로 변환해준다.




...결국 ‘소득 없는 생산’과 ‘소비 없는 풍요’라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며, 경제 시스템의 순환 자체가 멈춰버릴 수 있다. 아무리 값싸고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매할 소비 여력이 없다면 기업은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투자 위축과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부 계층의 빈곤 문제를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실존적 위협이다.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려는 기본소득, 국경 없는 분배와 디지털 시민권을 실험하는 월드코인,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산 수단 자체의 공유를 지향하는 범용 기본 컴퓨팅UBC까지. 이 모든 시도는 AI 시대에 인류가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것인가’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이다.




...다시 말해 그의 ‘급진적 낙관주의’가 시스템의 최종 목적지와 규모를 결정한다면, 그의 ‘생존주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를 설계하는 방식, 즉 병렬적이고 다층적인 시스템 구축 방법론을 강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2가지 특성이 서로 보완하며 작동하기에, 올트먼은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실행 계획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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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 않은 깊은 산 - 블랙홀에 대한 진짜 이야기
베키 스메서스트 지음, 하인해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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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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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지는 도배지이다. 하지만 도배지를 벽에 붙이면 그건 벽지가 된다. 벽지를 구태여 도배지라고 부르지 않으니까. 그러면 그 벽지를 뜯어내면 그때부터 그것을 도배지라고 불러야 할까 벽지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내가 바뀐다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돌이켜봤을 때 지금은 아주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쪽으로.




...어른들 따위는 어느 시점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너무도 쉽게 잊은 채로, 마치 그저 주어진 것인 양 생을 살아간다. 다 망가져가는 것과 다름없는 생을. 나는 그것이 세계가 나를 ‘외부인’으로 만드는 교묘한 방식이라는 걸 깨우쳤다.

...나는 사는 동안 내 이야기의 완벽한 ‘외부인’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흉내. 그것은 흉내뿐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완벽한 ‘내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내 서사에 완벽하게 가담한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전한 슬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뜻이라는 게 있었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뜻, 의지, 그런 것들. 비록 미적지근할지언정, 중요한 건 분명히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첩을 꺼내지 않고 차장님에게 말했다. 차장님, 평생 차장님으로 남아주시면 안 돼요? 그러자 차장님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네모반듯한 돌들의 아귀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삶이 갈렸을 거라며 돌담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갈린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았다.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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