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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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라는 가장 잔인한 일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심오한 문제겠지만, 난 그런 쪽은 잘 몰라요.”
커브를 돌자 길이 아주 좁아졌다. 린윈이 계속 말했다. “어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의 실제 기능과 완전히 별개일 수도 있어요. 우표 수집가에게는 우표의 실제 기능이 전혀 중요하지 않죠.”



...생명이 미미한 존재인가요?”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이라는 물질의 운동 형태는 다른 물질의 운동과 비교해 더 우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아요. 생명에서 새로운 물리 법칙을 찾을 수 없으므로 한 사람의 죽음과 얼음 한 조각의 융해는 내 관점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어요. 천 박사는 가끔 생각이 너무 많아요. 우주의 궁극적인 법칙을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세요. 그렇게 살면 훨씬 편안할 거예요.”




...특히 인간의 행동은 훨씬 복잡해요. 그들이 비양자 상태의 우리 현실 세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여전히 풀기 힘든 수수께끼예요. 이 과정에는 논리적, 심지어 철학적 함정이 많아요. 예를 들면 그들이 편지를 썼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편지가 비양자 상태가 되어 당신에게 발견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그들 눈에는 현실 세계도 양자 상태로 보이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당신의 확률구름 속에서 현재 상태의 당신을 찾는 건 아주 힘든 일일 거예요.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멀고 아득할 거예요…….




...작별 앞에서 공허한 축복의 말은 하지 않을게. 군인에게 축복은 무의미하니까. 그 대신 경고의 말을 남길게. 그 무시무시한 것들이 언젠가 네 동포와 가족의 머리 위에 떨어질 수 있고, 네 품에 안긴 아기의 연약한 피부에 닿을 수 있어. 그런 일을 막는 최고의 방법은 적이나 잠재적인 적보다 먼저 그걸 만들어 내는 거야! 얘야, 이게 내가 네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축복이란다.’”




...전자를 묘사하는 파동함수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매개변수 하나를 무시했어요. 바로 관측자예요.”
“관측자요? 누구요?”
“그 개체 자체요. 일반적인 양자 입자와 달리, 의식을 가진 양자 상태의 개체는 자기 관측을 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자기 관측은 어떤 역할을 하죠?”
“당신도 보았듯이, 다른 관측자의 영향을 상쇄하고 양자 상태가 붕괴하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어요.”




...“파커 박사님, 아주 중요한 연구가 될 겁니다. 만약 정말로 우리 세계를 관측하는 초월적 관측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인류의 행동은 훨씬 더 신중해질 겁니다……. 비유하자면 인류 사회 전체도 불확정적인 양자 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그런 초월적 관측자가 있다면 인류 사회를 다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상태로 ‘붕괴’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 초월적 관측자를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지난 전쟁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딩이는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죽음은 강한 관측자에서 약한 관측자로, 그리고 마침내 비관측자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내가 약한 관측자가 되면 장미의 확률구름이 파괴 상태로 붕괴되는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그때 나는 그 장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끝에 다다를 때, 마지막으로 눈을 뜰 때. 모든 지성과 기억이 과거의 심연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과 꿈속으로 돌아갈 때. 그때가 바로 양자 장미가 내게 미소 짓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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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 원작소설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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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튼 레이프 팰런만 제거되면 다 해결될 문제였다. 과연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당방위일 수도 있다. 내 가족, 내 인생, 내 대부금, 내 미래, 나 자신, 내 삶을 살리는 일이니까. 명백한 정당방위다. 




...좋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도 있는 법. 하지만 우리 중산층은 인생의 매끄러운 진행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고소득 계층으로의 진입을 포기했으니 우리를 밑바닥으로 내몰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에 충성했으니 우리의 생계를 끝까지 책임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우리가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그 여파는 몇 개월, 아니, 몇 년 넘게 이어진다. 심한 경우에는 한때 마음껏 누렸던 경제적인 능력과 안전과 자부심을 영영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처참하게 내팽개쳐진다는 것이다.




...나는 빌리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나를 지켜줄 사람은 세상에 오직 나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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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가족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사과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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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 머니 리셋 -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궁극의 통화, 미래를 삼키다
정구태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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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즉 CBDC에 깊은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가 통화 시스템을 완전히 통제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오히려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지지했다. 이것은 단순한 화폐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철학의 대립이다. 하나는 신뢰는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전통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신뢰는 시장과 기술이 분산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탈중앙적 철학이다.



.... 담보 없는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위험한 실험으로 간주되며, 모든 스테이블코인은 반드시 검증 가능한 자산으로 완벽하게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와 자본 효율성이라는 이상을 좇았지만, 시장의 신뢰라는 사상누각 위에 세워진 허상임이 증명되었다. 테라-루나의 비극은 혁신이 견고한 리스크 관리와 투명한 신뢰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값비싼 교훈이다.




...우리가 은행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상품들이 디파이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코인을 예치하고 이자를 받는 ‘스테이킹Staking’, 담보를 맡기고 코인을 빌리는 ‘렌딩Lending’, 내가 가진 코인을 다른 코인으로 교환하는 ‘스왑Swap’ 등의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이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디파이의 근간은 이 세 가지 기능에서 출발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미국의 외환시장 안정화, 국채 수요 창출, 금융 패권 유지라는 전략적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달러 약세 국면에서 미국은 금리 인상이나 직접 개입 대신 민간이 주도하는 디지털 달러 네트워크를 확장해 글로벌 수요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러한 흐름은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시대의 ‘사설 국채 은행’ 역할을 하며 미국이 세계 금융 질서를 재편하는 핵심 수단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 사례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지 첨단 기술이나 투자 상품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생존 수단으로도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하거나 통화가치가 급변할 때 스테이블코인은 수단이 아니라 해답이 될 수 있다. 법정화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USDT는 나날이 ‘디지털 달러’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결국 JP모건은 폐쇄형과 퍼블릭 체인이라는 두 무대 위에서, 각각의 특성과 리스크를 고려한 이중 실험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은 은행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은행이 만들면, 이 기술은 훨씬 더 넓은 곳에서, 훨씬 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단지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 금융 시스템의 미래를 누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매우 전략적인 선언이다.




...민간 기업의 결제 서비스가 중국의 금융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규모가 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통해 이들의 영향력을 제어하고자 했다. 두 번째 이유는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통해 국제 화폐 패권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현재 국경 간 금융거래는 대부분 스위프트 송금망에서 미국 달러화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국제결제 체계가 다변화하는 쪽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화를 달러에 대적할 만한 통화로 키우고 싶은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와 송금을 넘어 다양한 산업과 거시 경제 영역에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실물 자산 토큰화를 통한 투자 혁신, 국제 통화 체제의 다변화 시도, 대기업 주도의 결제망 재편 그리고 미시·거시 경제 수준의 효율성 제고 등 다층적인 변화의 중심에 스테이블코인이 자리한다. 앞으로 규제가 명확해지고 기술이 성숙함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의 활용 범위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곧 금융의 민주화와 효율화 그리고 실물경제와 디지털 경제의 연결 고리 강화로 이어져, 현금 없는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 교환의 표준으로 스테이블코인이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만약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경을 넘어 일상 결제와 송금 시장을 점유하게 된다면, 이에 대응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하지 못한 한국은 통화 주권과 금융 질서 면에서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디지털 통화 환경에서조차 외화 의존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 간극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좁히느냐에 따라, 기술을 선도할 기회와 제도적 리스크 사이의 균형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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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전승환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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