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죽음 -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죽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 틈새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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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다닐 때 생태학 교수님은 살아 있는 생명이 많은 곳에는 죽음도 많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사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생태계는 변함이 없으므로,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생명은 불멸의 존재예요. 개체가 대체될 뿐이지 생태계는 전혀 변치 않아요. 따라서 죽음은 없어요. 혁신이 있을 뿐이지요. 생물 시스템은 개체보다는 훨씬 더 우위에 있어요.




...자연에서는 사고를 당하거나, 감염되거나, 기생충 때문에, 굶어서, 잡아먹혀서 죽는 거죠. 빠르거나 늦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 다 시험관이나 컵처럼 떨어져 깨지게 되어 있어요. 자연에서는 만성 질환이 없어요. 이런 병이 생길 정도의 나이까지 가질 못하니까요. 이런 것은 인간에게만 있어요. 대부분의 만성 질환은 60세 이후에 발생하는데, 심혈관, 호흡기, 신경 계통의 퇴화 과정과 관련이 있어요. 자연에서는 아무도 늙을 때까지 살지 못하기 때문에 만성 질환이라는 것이 없어요.




...길들인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인간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죠?”
“길들였다는 것 특유의 보살핌 때문에 모든 컵이 깨졌을 때도 살 수 있지요. 다시 말해 죽는 것이 당연한 그런 순간에도 말이에요. 조상들의 특성을 다 축적해 놓은 유전자들, 특히나 나이에 비해 늦게 발현되는 유전자들이 추적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활성화되는 거예요. 자연 선택의 눈에 띄지 않은 유전자들의 발현을 우리는 늙었다고 하는 거죠. 이런 현상은 우리 인간이나 우리가 길들인 동물만 겪고 있는 것이고요.




... ‘젊어서는 뼈를 단단하게 석회화시키는 호르몬인 칼시토닌을 만드는 유전자를 한번 상상해 봅시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늙어서는 관상동맥의 석회화(동맥 경화)를 유발하지요.’”
“여기에서 길항 작용이란 말이 나오는군요.”
“젊어서 지나치게 풍요를 즐긴 대가를 치르는 거죠.”
“같은 유전자 안에 생명의 동인과 죽음의 동인이 함께 머무는 것이군요.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 고유의 두 가지 기본 동인이 말이에요.”
“자연 선택에서는 양 끝에서 서로 당기는 상반된 두 가지 힘이 작용해요. 첫 번째 힘은 두 번째 번식기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르니까 가능하면 처음에 많은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두 번째 힘은 두 번째 해가 있으니까 첫 번째 해에 죽는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요.”
“균형을 잡아야겠군요.”
“자연 선택은 바로 이 균형점에 접근하고 있어요.





...아프리카 북부에서 이슬람교도가 죽자, 매장할 준비를 하던 울라마가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만일 죽음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죽음을 피하는 데 평생을 다 바칠 것입니다.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을 테고, 무엇을 시도하거나 무엇에 맞서 싸우지도 않을 겁니다. 물론 무엇을 발명하려고 들지도, 건설하지도 않을 테고요. 생명은 끝없이 이어지는 회복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들이여. 삶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선물을 준 신에게 감사합시다. 낮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밤이 있으며,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침묵이 있으며, 건강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병이 있으며, 평화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전쟁이 있는 것입니다. 휴식과 기쁨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피곤과 고통을 준 신에게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신에게 감사합시다. 신의 지혜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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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앉기를 권함 - 스즈키 슌류, 마지막 가르침
스즈키 슌류 지음, 김문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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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식탁을 치워야 하고, 식탁이 깨끗할 때조차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또 하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식탁이 더럽다고 생각해서 깨끗이 치운다면, 그 마음이 더러운 겁니다. 뭔가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더럽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더럽다’와 ‘깨끗하다’, 아니면 ‘옳다’와 ‘그르다’를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분별을 거두는 것입니다. 깨끗이 치우되 그게 더러워서 치우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사는 동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치운다는 것이지요.




...돌 위에는 풀을 심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돌처럼 되어서 그 위에 좋지 않은 것이 자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선이나 악은 불성 위에서 자라날 수 없습니다. 불성은 단단하고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은 망상과 같고, 망상은 여러분의 정신에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늘로 돌을 꿰뚫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침찰針札’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늘로 강철을 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우리 식으로 수행할 때 필요한 정신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현자들의 형상을 마음속에 품어야만 그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자들의 진짜 존재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때조차 그렇습니다...여러분은 책 안에 위대한 현자를 담고 그 책을 책장에 꽂아둡니다. 만약 그들을 책장에 꽂아두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무아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존재하되, 자아로서가 아닌 ‘우리 자체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수행하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누구인지, 사물이 무엇인지를 진정한 의미에서 깨닫는 것입니다. 그 방석 위에서 여러분이 앉아 있는 방식은 사물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존재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
바람이 멈출 때, 꽃은 떨어진다.
새가 노래할 때, 산은 더 고요해진다.

바람이 멈추더라도 여전히 꽃은 떨어집니다. 바람이 없으면 꽃은 가만히 있어야 하겠지만, 바람이 없어도 여전히 꽃이 떨어집니다. 새가 노래하면 조용하거나 고요하지 않지만, 머나먼 산에서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산의 고요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 시는 ‘유有’와 ‘무無’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존재하거나 가끔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을 때 가끔은 존재합니다. 꽃이 떨어질 때는 바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바람이 존재하지 않아도 여전히 꽃은 떨어집니다. 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여러분은 바람이 불 때보다 바람의 존재를 더 크게 느낍니다. 새가 노래할 때 여러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보다 산속의 고요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진정한 ‘유’와 ‘무’의 감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앉아 있는 실질적인 수행을 강조하고, 어떻게 해야 매 순간 우리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지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저 앉는 것은 매 순간을 살아가는 일이며, 우리는 일상에 앉기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면이나 외면에서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지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일을 해야만 합니다. 실제 행동을 무시하고 다른 뭔가를 생각한다면 이는 진짜 수행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루지無漏智, 즉 새지 않는 지혜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는 구멍 뚫린 지혜, 새어 나가는 지혜입니다. 무루지는 구멍 없는 지혜를 의미하지만, 우리에게 구멍 없는 지혜는 그저 물속에 바구니를 담가놓은 것뿐입니다. 물속에 있는 동안에는 새어 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게 귀의이며, 우리가 좌선 수행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계율의 해석이자 좌선의 이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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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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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외할아버지가 내 이름의 뜻이 좋다고 칭찬하셨어. ‘비담박무이명지, 비녕정무이치원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명확히 할 수가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이를 수가 없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계자서에 나오는 말이야.”


시스템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언제나 현실적인 선택을 하죠. 두 가지 선택지가 앞에 있을 때 자기 윤리 기준을 위배하지만 않는다면 리스크가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에요. 다만 이 평범한 선택이 쌓이면 ‘악’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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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일본 은퇴자가 사는 법 - 일본 은퇴 선배들의 인생 후반을 위한 현실 조언
김웅철 지음 / 부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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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사리란 문자 그대로 일상에서 필요 없는 것을 끊고斷, 불필요한 물건을 과감히 버리며捨, 물건에 대한 집착과 이별離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집착을 버리고 심적 평온 상태를 지향하는 요가 철학의 단행, 사행, 이행에서 따온 개념으로 작가 야마시타 히데코가 이 철학을 청소와 정리정돈이라는 일상에 접목시켜 큰 인기를 얻었다. 단사리의 핵심은 ‘버려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신변의 물건을 정리하는 ‘뺄셈’의 생활 습관이 아니라 과거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는 ‘덧셈’의 철학이다.




...제3의 인연이라고 해서 꼭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도시화의 매력은 마음에 맞지 않은 이웃과 사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상황에 따른 ‘용도별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그의 말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용도별 파트너십’이라는 용어인데, 이것은 은퇴 이후 일상의 다양한 분야를 함께하는 분야별 인간관계를 말한다. 우에노 교수는 용도별 파트너십, 즉 제3의 인간관계는 ‘교양 파트너십, 전문가 그룹 파트너십, 스포츠 파트너십, 식사 파트너십’ 등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모임’이라고 설명한다.




...너무 가깝거나 친밀한 관계도 금물이라는 것이다. 사적인 일에 깊이 개입하거나 관여하다 보면 관계가 어긋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얕으면서 담백한 관계’가 오히려 안전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필요 이상의 선물이나 호의를 베푸는 것도 자제하는 게 좋다.




...혼자 지내는 힘’이야말로 은퇴 후 충실하게 노후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호사카 교수는 이를 ‘고독력’이라 부르는데, 50대가 바로 고독력을 길러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혼자 사는 힘’을 기를 수 있을까? 호사카 교수는 ‘나 홀로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여행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자신의 인생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혼자서 여행을 해 봐야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자아 성찰이 고독력을 키워 주고 더 나아가 인간적인 성숙도를 높여 준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읽고, 매일 똑같은 산책 코스를 걸으며, 마음이 편한 사람들하고만 만난다’는 생활 패턴은 겉보기에 스트레스가 없는 바람직한 일상일 것 같지만 실은 이런 변화 없는 일상이 몸과 마음을 빠르게 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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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는 쪽으로,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조태호 지음 / 어떤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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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모두 빼 버린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 나와 내게 부여된 과거의 것들을 하나씩 구분 짓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여기’ 말고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애당초 없다. ‘지금 여기’가 쌓이고 쌓여 내 삶이 된다면, 내가 누리는 ‘지금 여기’를 허망하게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조금씩 지식이 쌓일 때마다 교만한 마음도 쌓여 간다. 그 중간 과정을 인지하기는 매우 어려워서 문득 돌아보다 어느덧 교만과 오만의 맨 끝에 다다른 자신을 만나게 된다. 비록 느릴지라도, 움직이듯 보이지 않더라도, 미래의 어느 순간 깜짝 놀라 내가 어디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이, 반드시 온다.



.....생각지도 못한 일은 늘 일어난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결정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연속적으로 흘러왔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연속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일들은 연속적이거나 인과적이지 않다. 내가 지금 겪는 일들이 3년 전 일의 결과라고 혹은 5년 전 일의 결과라고 단언할 수 없고, 내가 내일 겪을 일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일의 결과일지도 예상할 수 없다. 오늘 겪은 일은 내일 맞이할 일과 서로 독립적이므로 오늘의 슬픔을 내일로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지나간 일은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과거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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