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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문장들 -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하는 시인의 말들 ㅣ 문장 시리즈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6년 2월
평점 :
...시를 읽다 보면 마음을 뺏긴 한 줄의 문장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문장 너머로 시는 계속 이어진다. 밑줄 친 금언, 근사한 아포리즘 너머에 진짜 삶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쓸쓸하고 그래서 오기가 생기는 것처럼. 짧은 시도 끝까지 다 읽어야 그 뜻을 알 듯, 삶도, 짧고 보잘것없는 삶도 끝까지 다 살아야 비로소 뜻을 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 읽어도 알 듯 모를 듯한 시처럼 다 살아도 모를지 모른다. 그 막막함이 다시 시를 부른다.
...너를 모욕하는 세상을 벗어나 흰 바람벽 안으로 숨고 싶은 네 마음을 모르지 않아. 그러나 너를 모욕한 이들을 원망하기 전에 네가 세상을 모욕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렴. 스스로를 높이기 전에 네가 누군가를 너만큼 높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렴. 혹시 세상보다 먼저 네가 벽에 벽을 치지는 않았는지, 한 번만 의심해 보렴.
...‘인생이 뭐야?’라고 누가 물으면 딱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모르는 일이 아는 일이 되어 흘러갈 때까지 떨고 있는 일이야...그나저나 나는 좀 더 오래 이 물속에서 떨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아직도 죄다 모르는 일뿐, 도대체 아는 일이 없으니…….
...사는 게 우울하고 괴로운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눈이 높은 게 문제다. 타인과 세상을 보는 눈이 높으면 배신감을 느끼고,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으면 가랑이가 찢어져 아프다....그러니 잊지 말자, 내 주제!상기하자, 피의 계율!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맞아,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어. 이어지는 시구들도 다 멋져서,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는 말에도 절로 끄덕끄덕했지. 하지만 이 대목, 너는 존재하기에 사라질 것이며 사라지기에 아름답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고개를 끄덕일 수 없더군. 그저 아득할 뿐이었지...언젠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나를 잠 못 들게 하던 쓸데없는 불안은 사라진 뒤일 거야.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시를 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