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독서 - 오직 읽기로만 열리는 세계
미사고 요시아키 지음, 하진수 옮김 / 시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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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삶이 순조로울 때는 책이 그다지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실패했을 때, 눈앞이 캄캄해졌을 때 ‘인생의 책’을 만납니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의 명저인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는 “교양은 순경順境에서는 장식이고, 역경에서는 대피소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악의가 없고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이 사실 제일 무서워요. 난 평소에 늘 생각했어요. 세상에는 차가운 비가 계속 내리고 있고 우리에게는 그것을 멈출 방법이 없지요. 하지만 상상력이라는 우산이 있다면, 그것을 펼칠 수 있어요. 우산이 작으면 나밖에 쓸 수 없지만 우산이 크다면 넓게 펼쳐서 많은 사람이 비에 젖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고요.


...현실 세계의 ‘수직 관계(상사와 부하, 선배와 후배)’와 ‘수평 관계(동네 친구, 학교 동기)’에서 ‘진심’을 토로하는 것은 리스크가 높았다. 나카지마 다케시는 직장에서의 ‘수직 관계’와 주거지에서의 ‘수평 관계’는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진심으로 무엇이든 말할 수 있을 리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이해를 수반하지 않는 비스듬한 ‘경사傾斜 관계’가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결핍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공유’라는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물리적인 사물, 사적 소유, 자기 정체성의 관계성이 근본부터 진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가정은 절반가량, 즉 약 5,000만 가구가 전동드릴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인의 대다수는 전동드릴을 생애 단 6~13분밖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레이철 보츠먼과 루 로저스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전동드릴을 갖는 것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설령 당신들의 운명이 환경미화원이라고 해도 부디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린 것처럼 도로를 청소해주길 바란다. 부디 헨델이나 베토벤이 음악을 만든 것처럼 도로를 쓸고 닦아주면 좋겠다. 셰익스피어가 시를 쓴 것처럼 청소해달라. (중략) 부디 앞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가 멈춰서 ‘이곳에는 일찍이 자기 일을 훌륭하게 해낸 위대한 청소부가 있었다’라고 할 정도로 자신이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실제로 하네다공항이 ‘세계에서 제일 깨끗한 공항’으로 선출되는 데 일조한 전문 청소부 니쓰 하루코新津春子는 저서 《세계에서 제일 깨끗한 공항의 청소부世界一淸潔な空港の淸掃人》(2015)에서 “청소부를 마치 하인이나 투명인간으로 여기는 사회의 가치관 자체를 바꾸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동화작가 고미 타로五味太郞는 《쇼핑 책買物繪本》(2010)에서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는지를 이야기로 엮었습니다.
돈으로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돈으로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돈으로 굳이 ‘검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즉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인이 생산성을 향상시켜 획득한 ‘지루함’이야말로 고뇌의 본질이라고 갈파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블레즈 파스칼입니다. 그는 인간의 고독한 실존을 다룬 고전 《팡세》(1670)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단 하나의 일, 즉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파스칼은 ‘제아무리 훌륭한 자리에 오른’ 왕이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스릴과 흥분이지 결과 자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소란 속에서 춤을 추다 보면 인생은 어느새 끝나버린다”는 파스칼의 지적은 너무나 현실적이라 무서울 정도입니다.


...나카지마 다케시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거 우리는 ‘전통’에 따라 죽은 자와 연결되고, ‘상식’에 따라 죽은 자와 대화해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전에 없는 자산과 지식,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불행한 것이 이 연결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며, 우리가 외로운 것은 ‘현대는 우리에게 기대어 있는 죽은 자死者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손을 뻗고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무한한 삶밖에 없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었다.” 이런 대단한 문장이 단바 테츠로의 영화 〈대영계〉에서 시작될 줄은 몰랐습니다. 책을 펼치면 첫 문장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책 읽기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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