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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소유 - 법정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살아오면서 한번도 스님을 뵌적은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스니의 신간이 나오거나 하면 얼른 사서 읽어보게 되었다. 아마도 불교신자가 아닌 누구라도 스님의 글을 한번 읽어보면 그 감흥에 살짝 빠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스님은 그 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어쩌면 나는 스님의 글에 항상 얽매어 있었던것 같다. 수많은 책을 다보지는 않았지만 며칠이면 혹은 몇달이면 달라질수있다라는 유혹의 글들이 참 많다. 그러면서 나도 변할수 있을까 그렇게나 빨리 생각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착각인듯 싶다. 사람의 본성혹은 습관은 그렇게 쉽게 바꿀수 없는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아니 읽고 있는 동안은 나도 변해야지 하면서도 책을 덮고 책꽂이 꽂아놓고서는 다시 잊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좀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말이다. 그러다가 또다시 스님의 글을 어디선가 보면 또 반가워서 다시 갱생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때였던가 스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 있었다. 그건 경허스님의 일생을 다룬 최인호의 길없는 길 이었다. 그 책을 읽고서는 과연 경전을 열심히 읽는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것일까...이책에서도 나왔듯이 어떤 한아주머니의 말씀...팔만대장경이 그저 기와집지붕 같다는 그 말....나도 예전에 한번 생각을 했었기에 이해가되었다. 그랬었다. 그때당시에 불교는 그저 어떤것을 지향해서 믿는다기보다도 그저 삶의 하나속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불교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의심을 했었다. 그때쯤 스님의 책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도 실은 잘모르겠다. 경을 외우고 읽는것도 중요하면서 좌선또한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아마도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님들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굴레에 얽매여 산다면 그것이 부처님의 말씀을 다 이룬것일까...파계승마냥 정말 거침없이 걸어가는 스님은 정말 파계승일까 싶다. 어찌보면 속세에서 혹은 산속에서 수행을 하면서도 마음은 속세 혹은 산속에 있다면 그건 내가 어디있던지 그것은 상관없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님의 책을 읽고서 무작정 스님께 찾아가서 좋은 말씀을 얻으려고 했었던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정답은 바로 자신안에 있는데 그저 눈앞이 어두워서 보지를 못하는게 아닐까...그래서 예전에 성철스님이 자신을 만나려면 천배를 해야한다는 그 말씀은 그저 스님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답은 자신안에 있는것을 깨우치게 해주려고 한그 일을 무소유 책속에서도 만날수 있었다. 어쩌면 가고자 하는곳은 일치하지만 가는 방향은 저마다 다를수 있을것이다. 그걸 또한 인정해주는것이야말로 진실된 도리가 아닐까 싶다. 그저 내가 옳고 너는 틀린것이 아닌 서로의종교를 인정해주고 혹은 방향또한 인정해주고 말이다. 무소유안에는 무소유만 있는게 아니었다. 스님이 남기고 가신 책들의 포인트가 여기저기 숨어있다. 그러면서 이 구절이 어디서 나왔더라 하면서 책의 제목을 생각하는것도 재밌을듯 싶다. 스님이 입적하시기전 그렇게 바라셨던 책의 절판이 오히려 상행성을 키운듯해 마음이 씁슬하긴 하다. 정말 스님이 바라셨던 마음을 왜 모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행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무소유도 소유 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고 김수환추기경님의 말씀처럼 이 무소유라는 책만큼은 끝까지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스님의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스님이 정말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되새김질 해봐야겠다. 스님을 책으로혹은 신문 텔레비전에 뵜을때 스님은 그저 나이드신 유명한 스님이셨는데 스님에게도 속가의 생활과 함께 어린시절이 있는걸보면서 조금 의아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행과 함께 자신의 고행이 있었기에 이자리까지 아니 스님은 버리셨지만 오신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