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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아이, 침묵을 깨다
서점순 지음, 배진시 외 옮김 / 긱 / 2026년 7월
평점 :
📍서평
책을 읽기 전까지 책의 앞쪽과 뒷쪽이 절반씩 흑과 백으로 나뉘어져 있어, 작가의 글과 연관자의 말이나 기록물 등이 실렸으리라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두 개의 색 구성은 한글로 전면부터 하얀 배경에 검은 글씨가, 영문으로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진 것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로 한 개인의 비극적인 서사가 담겨있다. 그녀는 1970년대말, 납치로 인해 어린 나이에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감금과 폭행까지 당하고, 11살에 프랑스로 강제 입양되었다. 마주하기 힘든 상처들을 거슬러 오랜 세월간 지워지고, 조각난 기억들을 주워 모아 자신만의 언어로 써 내려간 기록물이다.
그동안 ’입양‘에 대해서 보호자가 없었던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사랑받는 가정에 일원이 되는 것이라고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가벼이 생각했었는데 아픈 지난 날의 역사와 입양인들의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원치 않는 단절로 인해 자신의 뿌리조차 제대로 알 수 없고, 오랫동안 그늘 속에서 침묵의 시간을 견딘 그녀가 안쓰러웠다. 비극의 연속 안에서도 자신처럼 뿌리 뽑힌 상처를 마주한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고자 국가와 사회가 덮으려 했던 외면된 진실을 깊은 헌신의 기록으로 담아낸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상 깊은 구절
✅기억의 회색지대를 지나 상실의 터널을 건너고, 고요하지만 쉼 없이 이어 온 저항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낳은 산물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 파편화된 장면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질서도 논리도 없이 밤마다 되돌아오는 기억들을 의심하며 모든 것을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면의 작업을 이어 가며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아직 단어로 옮겨지지 못한 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던 진실이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게 쌓이는 먼지처럼 소리 없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무거운 짐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침묵 속에서 습관적으로 내뱉는 사과, 누군가에게 방해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두려움이 모두 그 증거였다. 보이지 않는 수치심은 내 존재 자체를 변명하게 했고 요구를 최소 화하며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결핍 속에서도 분명 삶이 있었고, 놀이가 있었으며, 아주 미미할지언정 온기가 존재했다. 그 평범하고 연약한 기억들은 내가 버틸 수 있게 돕는 살아 있는 뿌리가 되어 주었다. 도둑맞은 어린 시절로부터 남겨진 향기와 몸짓, 장면들은 나를 완전히 파괴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내 안에서 꺾이지 않고 버티던 무언가를 다른 곳에서 찾도록 이끌었다. 나는 이제 그 흔적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랫동안 나는 이 파편화된 장면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질서도 논리도 없이 밤마다 되돌아오는 기억들을 의심하며 모든 것을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면의 작업을 이어 가며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아직 단어로 옮겨지지 못한 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던 진실이었다.
✅이후 나는 두 개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정리된 과거를 가진 평범한 아이처럼 행동했지만, 내면에서는 모든 고통을 잠긴 방에 밀어 넣고 문손잡이조차 잡지 않으려 애썼 다. 침묵이 고통을 지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리만 옮길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그 침묵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지도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돌려주지 않았고, 서류는 끊어진 관계를 이어 주지 않았으며, DNA 검사는 어머니를 되찾아 주지 못했다. 치유란 한국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막 깨어난 이 모든 진실과 함께 내가 앞으로무엇을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가 겪은 일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봉합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평생에 걸쳐 심각한 상흔을 남기기 때문이다.
✅입양은 출신을 지워 버리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을 다른 땅에 옮겨 심는 ’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