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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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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청소년문학 4  <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공선옥, 방미진, 성석제, 오수연, 오진원, 조은이, 최인석, 표명희 여덟명의 작가들이 청소년 10대의 '선택'이란 주제를 놓고 여덟편의 이야기를 꾸려놓았다.

이야기라지만 동화가 아닌 소설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인물들과 만나야 한다.

고독하고 힘든 일상은 나의 길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어도 희미한 모습으로 그렇게 떠돌게 한다.

 

학원과 성적 그리고 경쟁,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잠을 줄이고 자유를 억압하며 살고 있는 이 땅의 10대들에게 일류 대학 이외에 또 다른 선택이나 대안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책으로 10년을 넘게 사육(?)되어 온 나와 우리 아이들.

하지만 삶의 갈피마다 똑같은 날은 없었고 그 날 그날 가슴 두근거림과 파닥거리는 우정이 숨쉬고 있음을 살아있는 몸을 가진 존재란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 그런 믿음으로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소설의 길로 함께 가 보는 거다.

 
첫 장을 열면 작가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을 만나게 된다. 라일락 피면을 라일락꽃 피면으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혼자 궁시렁 거리며 석진과 윤희의 만남을 작게 수줍게 피어나는 연애 감정을 기대했는데 .......핏빛 오월은 그 젊은 청춘들을 부끄러움과 염치아는 인간이란 이유로 죽음의 길을 가게 한다. 거대한 폭력 앞에 두 사람의 선택은 영화 <화려한 휴가>가 주지 못한 인물의 갈등과 날 것으로 다가오는 생생함(석진엄니의 걸죽한 사투리만큼)을 느끼게 한다.

 
오월 광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유산이자 우리가 넘어서야 할 또 하나의 경계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책을 읽을 때면 뒤에서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아님 휙휙 건너뛰며 읽거나.

다시 차례를 펴서 오진원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를 읽기로 했다.

 

가족이야기다. 입양도 아니고 남자 둘이 서로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대리모를 통해 아기를 낳아 키운다. 아빠는 폴이라는 네덜란드인이고 또 다른 아빠는 뜨개질을 하며 자기 안에 여자로 사는 아빠이다.

그런 아빠들 사이에 보린은 나름 당당하게 옹골차게 커 왔다. (이건 순전히 육감이다.)

 

맨발...... 당신들은 나를 업고 맨발로 뛸 수 있는 사람. 내 아픔과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 날 위해 대신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받는 것은 발가벗겨지는 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을 보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태양이 눈부셨기에. 나는 태아처럼 움츠러들었다.

(148면)

 

오진원은 1981년생이고 장편동화 <플로라의 비밀>을 썼다. 나는 오진원의 장편동화를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마지막 주인공의 죽음을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동화라면 아이들에게 주는 이야기라면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굉장히 산뜻하고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작가였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젊은 친구가 이다지도 사랑에 대해 속살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한 번 놀랐다.

 

하지만 이 작품도 마지막 내 예감을 확 빗나가 버렸다. 예린의 선택이 아닌 폴의 선택이 전면으로 나왔다. 작가의 말이 불쑥 끼어든 느낌. 아주 낯설다. 이 때부터 작품은 변주되었고 나는 그 라인을 따라가지 못해 끝가지 읽어낼 수 없어 힘들었다.

나만 그럴까? 그래서 많이 아쉽다.

 

주인공 이름이 이렇게 찾기 어려워서야..... 일곱번째 이야기 최인석의 <쉰아홉 개의 이빨>의 한 줄 서평이다.

주인공은 순근이다. 별 어렵지도 않으면서. 주인공 이름 알아내느라 힘들었다. ㅋㅋㅋ

엄마가 재혼했다. 그리고 순근은 목사님 아들이 됐다. 내가 아는 목사님 아들은 개망나니(?)였는데......

 

엄마들의 선택이 좀 지혜로웠으면 좋겠는데. 엄마들은 늘 이 모양이야? 혼자 성질이 났다.

그런데 몽둥이를 휘두르는 주의 사자는 장목사라 불리는 양아버지로 순근이를 목사가 되라고 중국어를 시키고 의대를 가라고 강요한다. 날마다 식사 자리에서 기도를 인도하라는 명령과 함께.

 

쉰아홉개의 이빨을 가진 친아버지는 치은암으로 돌아가셨다. 다혈질의 아버지는 노조활동을 했고 그의 남자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엄마는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아직도 우리는 근대를 살아간다. 옆집 부부싸움에는 경찰도 못 말리고 성폭력과 성희롱은 은밀하게 남성의 팔을 들어주고 있다. 대부분 아버지들이 이런 폭력과 억압으로 가정을 다스린다.

거울 앞에 입을 벌리고 이빨을 세는 순근의 선택에 지지를 보낸다.

한 편으로 내 아이가 자라 이빨을 세어보라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떠오른다.

나는,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

 

수다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분명 아이들의 수다 속에 그들만의 문화와 생각이 동동 떠 다닌다.
뭔가 있다. 그게 뭐냐고?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를 읽어보면 안다.

그들만의 언어와 상상력과 관계가 수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끔은 나도 그 수다 속에 친구처럼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고 싶다.

 

문학이 필요한 나이는 언제일까? 스무살 아니 서른 즈음일까?
아닐 것이다. 그 때는 펄펄 뛰는 심장과 혈기왕성한 몸이 문학의 자리를 대신 할 때가 아닐까?
마흔이 넘어 인생의 전환점을 돌 때, 그 때부터 문학은 좋은 길동무가 되는 건 아닐까?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멈춰서서 되돌아보기의 힘을 가진 문학, 소설이야말로 내 안에 가장 인간다운 소망스런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이랬을거다. 앞으로 나의 삶은 ....... 다른 주인공 둘의 이야기 속에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또 다른 공간인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소설이 곧 판타지란 말인가? 알쏭달쏭하다.

 

제일 따뜻한 느낌으로 읽은 것은 표명희의 <널 위해 준비했어>이다.

조은이의 <헤바>도 그렇지만..... 나는 따뜻한 사랑이야기가 좋다. 그런 영화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고? 아이들이 살아 갈 이 세상은 그리 살만한 곳이 못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빔이 할리를 타고 앨리스를 만나러 간다.

섬진강 꽃길을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 좋다.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이 주연한 영화 <가을로>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 된다.

지수는 이렇게 적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지.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힘이니까.>

 

빔과 앨리스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아이들의 마음엔 살아갈 용기가 가득하길......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많은 이들, 아름다운 우리의 청춘들의 가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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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2007-10-2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은경님의 리뷰 너무 좋네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오진원의 굿바이랑 표명희의 널 위해가 좋았어요. 둘다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오진원 굿바이는 진짜 좋은 문장 너무 많죠.... 그런데 마지막에는 은경님과 생각이 좀 다른게 마지막은 보린의 선택이라고 봐요. 폴이 배신을 하지만 여전히 아빠곁을 지키잖아요.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는데.... ^^ 암튼 이렇게 많은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봐서도 좋은 글이겠죵
 
산책 - 김천영 임덕연 2인 시집
김천영.임덕연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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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는 참 좋다.
그리 길지도 않고 무겁지 않는 품새에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 시집은 그리 비싸지 않아 참 좋다.

오늘 시집 한권을 선물 받았다.
초등 교사이자 경기지부 수석부위원장과 <우리 아이들>편집장을 한 임덕연선생님이 김천영선생님과 함께 펴낸 2인 시집 <산책>이다.

시집을 들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오후 한 나절을 보내고 지금은 해지는 저녁이 되었다. 시를 다 읽고 더 읽고 느낌이 좋은 곳은 접어두었다.
그런데 마음이 쓸쓸하다.

두 선생님 모두 도시를 떠나 원주와 여주에서 시골 아이들과 살고 있다.
남들이 다 떠나는 곳으로 내려가 흙집을 짓고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마흔 넘어 중반이 된 두 사람이 쓴 시가 모르던 혹은 잊었던 그리움과 사랑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두꺼비
김천영

밤늦게 사택 가는 길
가로등 불빛 아래
대문 앞에서 만난 두꺼비
그리 바삐 어딜 가세요
하며 빤히 쳐다본다
벌레 잡아먹으러
다 잠든 밤에
혼자 나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뒤뚱뒤뚱
가는 뒷모습에
나도 몰래
실실
웃음이 나온다

* 그리 바삐 어딜 가세요? 그러게 말이다. 이런 물음 앞에 시인은 두꺼비 뒷모습을 보며 혼자 실실 웃고 있다. 오래된 동무를 배웅하는 것처럼. 시인의 눈앞에 사라진 두꺼비가 내 마음 속으로 뚜벅뚜벅 거리며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딜 그리 바삐 다니시나? 느릿느릿 하게 묻고 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벚꽃
김천영

환하게 뜨는 널 본다
달빛에 기대
담장 너머 비추는
그 수줍음의 미소를 본다
겨우내 추위를 견디어
끝끝내 약속 지키며
봄이면 찾아오는 벚꽃이여
벗 꽃이여

*벚꽃을 벗 꽃이라 이름붙인 시인은 분교장에서 깊은 밤에 잠을 깨어 벚꽃을 보며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봄밤은 참 짧다. 벚꽃이 피는 밤은 더 그러하다. 바로 앞에 있는 시가 <학교가 끝나고>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새소리만 적막하게 간긴이 울어대는 그런 날 나는 두고 온 아내에게 미안하다. 어린 두 아이 뒤치다꺼리에 자기 직장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희끗희끗 눈이 남아 있는 앞산의 봉우리만 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런 시를 읊는 시인들 특히 남성 시인들이 참 어쭙잖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아주 그런 마음이 없진 않지만, 그 시인의 아내가 더 믿음직스럽게 떠오르고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상상을 해 본다. 어쩌면 시인이 시를 읊는 그 시간 그의 아내는 피로한 몸을 이끌고 저녁 준비를 하고 아이들 밥을 먹인 다음 설거지를 하고 청소와 빨래를 한 후에 내일 뭘 가르칠까? 잠깐 고민을 하거나 학교 일을 생각하다 스르르 잠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도 학교에 핀 벚꽃을 보며 오종종한 아이들의 미소를 떠 올릴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에게 축복이 함께 하길.......

사실 앞에 쓴 두 시는 시인을 모르고 시가 좋아 한 번 써 보았다. 그런데 시인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면 그 사람이 쓴 시는 남다르게 감겨올 것이다.

임덕연선생님은 농사꾼 같다. 금방 논일하고 온 땀 냄새 풀풀 나는 상일꾼처럼 든든한 모습이다. 그런데 시는 참 곱고 따뜻하다. 전국참실대회나 일꾼연수에서 뵌 선생님은 활동가의 모습이었는데 그가 쓴 시나 동시를 읽으면 천상 시인이다.
1부에는 <마흔>이란 삶의 자리에서 쓴 시가 열편이 실려 있다.

마흔
임덕연

휙 돌아서 다시 가고 싶다.
스물로

눈빛만 마주쳐도 가슴 떨려오는
사랑
다시 하고 싶다.

마흔의 첫 시다. 두 번째 시는 <마흔, 사랑할 나이>에서 마흔은/외로움의 벼랑 끝에서 되돌아서/더 큰 사람을 할 중 아는 나이다./라고 말한다. 가도 가도 팍팍한 <마흔, 길>을 따라 <마흔, 죽는다는 거>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되돌려 놓는다는 걸/비로소 알아가는 게 마흔이야/ 라며 인생의 한 구비 돌며 느긋함을 노래한다. 하지만 <마흔, 교실에서>는 누군들 꿈이 없겠냐마는 / 시골이 살기 좋다고 가르친 나는 /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아이들을 나무랐다 / 어차피 듣지도 않았다 / 라고 쓸쓸해한다.
그리고 이 시가 나온다.

마흔, 혹은 구월 백로 근처
임덕연

구렁이처럼
스르륵스르륵 발밑으로
구월이 지나간다.

풀섶에,
발이 푹푹 빠지는 갈대 우거진 곳으로
스멀스멀 도랑물이 흐르듯
구월이 또 지나간다.

흰머리 나는 머리는
기름기 없이 자꾸 풀풀 날리고,
저희들끼리만 신난 알밤나무는
툭툭 알밤을 지상에 던지고 있다.

사랑이 어찌 아름답기만 한가
나이 먹는 것도
구월이 지나가는 것도
아름답다 말하면
어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구월 풀섶에서
안간힘 쓰며 버티는 풀들 속에서
나도 안간힘 쓰고 있다

넘어지면 바로 스러질 것 같아
다시는 영영 못 일어날 것 같아
두 발로 지상을 버티고 서 있고 싶어
지나가는 구월을 견디고 있다.

*가을 산을 오르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발이 푹푹 빠지는 도랑물도 건너고 알밤나무 아래를 지나고 산봉우리까지 거침없이 올라가 구월 풀섶에 노랗게 변하는 가을 풀들 속에서 시인은 견디고 있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꺼운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여러 선배선생님들이 산이 참 좋다고 한다. 나는 혼자 가는 산이 아직도 무섭다. 겨울산은 더 무서울 것 같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산을 오르고 땀을 흘리다보면 자신이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고 했다. 시를 읽으니 이런 마음들이 모여 산을 오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추운 날
임덕연

추운 날
다른 사람 이부자리에
두 발 끝만이라도 사정해서 넣을 수 있다면
그 따스함이 정말 행복하다는 걸 안다

춥고 추운 날
새우처럼 구부리고도
어깨까지 겨우 당겨 덮을 수 있는
신문지가 있다면
신문지가 정말 따뜻하다는 걸 안다.

이불 차내며 난방기를 리모컨으로 눌러 끄거나
음성인식 장치로 온도를 조절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방구들 식어갈 때쯤
매캐한 연탄 냄새를 맡아가며
탄 구멍 맞추어 새 탄 갈아 넣는 사랑을 모른다.
불알 축 늘어지는 따스함을

* 시인은 지난 해 흙집을 손수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손전화를 쓰지 않는다. 그런 삶들이 모여 신문지가 따뜻하다는 성찰을 낳았을까? 시인이 사는 곳에 가 보고 싶다. 여주 산 깊은 상품초등학교 느타리버섯 같은 아이들도 보고 싶다. 헐렁한 옷에 밀짚모자를 쓰고 땀 흘리는 선생님을 만나 따뜻하고 맑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판화와 서각 작품도 보고 싶고 시 이야기도 더 듣고 싶다. 그러다 산골 깊은 밤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광속으로 살아가던 내가 더 느려진 삶으로 변할 수 있나 혼자 가늠도 해 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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