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 김천영 임덕연 2인 시집
김천영.임덕연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시는 참 좋다.
그리 길지도 않고 무겁지 않는 품새에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 시집은 그리 비싸지 않아 참 좋다.

오늘 시집 한권을 선물 받았다.
초등 교사이자 경기지부 수석부위원장과 <우리 아이들>편집장을 한 임덕연선생님이 김천영선생님과 함께 펴낸 2인 시집 <산책>이다.

시집을 들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오후 한 나절을 보내고 지금은 해지는 저녁이 되었다. 시를 다 읽고 더 읽고 느낌이 좋은 곳은 접어두었다.
그런데 마음이 쓸쓸하다.

두 선생님 모두 도시를 떠나 원주와 여주에서 시골 아이들과 살고 있다.
남들이 다 떠나는 곳으로 내려가 흙집을 짓고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마흔 넘어 중반이 된 두 사람이 쓴 시가 모르던 혹은 잊었던 그리움과 사랑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두꺼비
김천영

밤늦게 사택 가는 길
가로등 불빛 아래
대문 앞에서 만난 두꺼비
그리 바삐 어딜 가세요
하며 빤히 쳐다본다
벌레 잡아먹으러
다 잠든 밤에
혼자 나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뒤뚱뒤뚱
가는 뒷모습에
나도 몰래
실실
웃음이 나온다

* 그리 바삐 어딜 가세요? 그러게 말이다. 이런 물음 앞에 시인은 두꺼비 뒷모습을 보며 혼자 실실 웃고 있다. 오래된 동무를 배웅하는 것처럼. 시인의 눈앞에 사라진 두꺼비가 내 마음 속으로 뚜벅뚜벅 거리며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딜 그리 바삐 다니시나? 느릿느릿 하게 묻고 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벚꽃
김천영

환하게 뜨는 널 본다
달빛에 기대
담장 너머 비추는
그 수줍음의 미소를 본다
겨우내 추위를 견디어
끝끝내 약속 지키며
봄이면 찾아오는 벚꽃이여
벗 꽃이여

*벚꽃을 벗 꽃이라 이름붙인 시인은 분교장에서 깊은 밤에 잠을 깨어 벚꽃을 보며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봄밤은 참 짧다. 벚꽃이 피는 밤은 더 그러하다. 바로 앞에 있는 시가 <학교가 끝나고>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새소리만 적막하게 간긴이 울어대는 그런 날 나는 두고 온 아내에게 미안하다. 어린 두 아이 뒤치다꺼리에 자기 직장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희끗희끗 눈이 남아 있는 앞산의 봉우리만 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런 시를 읊는 시인들 특히 남성 시인들이 참 어쭙잖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아주 그런 마음이 없진 않지만, 그 시인의 아내가 더 믿음직스럽게 떠오르고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상상을 해 본다. 어쩌면 시인이 시를 읊는 그 시간 그의 아내는 피로한 몸을 이끌고 저녁 준비를 하고 아이들 밥을 먹인 다음 설거지를 하고 청소와 빨래를 한 후에 내일 뭘 가르칠까? 잠깐 고민을 하거나 학교 일을 생각하다 스르르 잠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도 학교에 핀 벚꽃을 보며 오종종한 아이들의 미소를 떠 올릴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에게 축복이 함께 하길.......

사실 앞에 쓴 두 시는 시인을 모르고 시가 좋아 한 번 써 보았다. 그런데 시인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면 그 사람이 쓴 시는 남다르게 감겨올 것이다.

임덕연선생님은 농사꾼 같다. 금방 논일하고 온 땀 냄새 풀풀 나는 상일꾼처럼 든든한 모습이다. 그런데 시는 참 곱고 따뜻하다. 전국참실대회나 일꾼연수에서 뵌 선생님은 활동가의 모습이었는데 그가 쓴 시나 동시를 읽으면 천상 시인이다.
1부에는 <마흔>이란 삶의 자리에서 쓴 시가 열편이 실려 있다.

마흔
임덕연

휙 돌아서 다시 가고 싶다.
스물로

눈빛만 마주쳐도 가슴 떨려오는
사랑
다시 하고 싶다.

마흔의 첫 시다. 두 번째 시는 <마흔, 사랑할 나이>에서 마흔은/외로움의 벼랑 끝에서 되돌아서/더 큰 사람을 할 중 아는 나이다./라고 말한다. 가도 가도 팍팍한 <마흔, 길>을 따라 <마흔, 죽는다는 거>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되돌려 놓는다는 걸/비로소 알아가는 게 마흔이야/ 라며 인생의 한 구비 돌며 느긋함을 노래한다. 하지만 <마흔, 교실에서>는 누군들 꿈이 없겠냐마는 / 시골이 살기 좋다고 가르친 나는 /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아이들을 나무랐다 / 어차피 듣지도 않았다 / 라고 쓸쓸해한다.
그리고 이 시가 나온다.

마흔, 혹은 구월 백로 근처
임덕연

구렁이처럼
스르륵스르륵 발밑으로
구월이 지나간다.

풀섶에,
발이 푹푹 빠지는 갈대 우거진 곳으로
스멀스멀 도랑물이 흐르듯
구월이 또 지나간다.

흰머리 나는 머리는
기름기 없이 자꾸 풀풀 날리고,
저희들끼리만 신난 알밤나무는
툭툭 알밤을 지상에 던지고 있다.

사랑이 어찌 아름답기만 한가
나이 먹는 것도
구월이 지나가는 것도
아름답다 말하면
어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구월 풀섶에서
안간힘 쓰며 버티는 풀들 속에서
나도 안간힘 쓰고 있다

넘어지면 바로 스러질 것 같아
다시는 영영 못 일어날 것 같아
두 발로 지상을 버티고 서 있고 싶어
지나가는 구월을 견디고 있다.

*가을 산을 오르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발이 푹푹 빠지는 도랑물도 건너고 알밤나무 아래를 지나고 산봉우리까지 거침없이 올라가 구월 풀섶에 노랗게 변하는 가을 풀들 속에서 시인은 견디고 있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꺼운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여러 선배선생님들이 산이 참 좋다고 한다. 나는 혼자 가는 산이 아직도 무섭다. 겨울산은 더 무서울 것 같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산을 오르고 땀을 흘리다보면 자신이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고 했다. 시를 읽으니 이런 마음들이 모여 산을 오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추운 날
임덕연

추운 날
다른 사람 이부자리에
두 발 끝만이라도 사정해서 넣을 수 있다면
그 따스함이 정말 행복하다는 걸 안다

춥고 추운 날
새우처럼 구부리고도
어깨까지 겨우 당겨 덮을 수 있는
신문지가 있다면
신문지가 정말 따뜻하다는 걸 안다.

이불 차내며 난방기를 리모컨으로 눌러 끄거나
음성인식 장치로 온도를 조절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방구들 식어갈 때쯤
매캐한 연탄 냄새를 맡아가며
탄 구멍 맞추어 새 탄 갈아 넣는 사랑을 모른다.
불알 축 늘어지는 따스함을

* 시인은 지난 해 흙집을 손수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손전화를 쓰지 않는다. 그런 삶들이 모여 신문지가 따뜻하다는 성찰을 낳았을까? 시인이 사는 곳에 가 보고 싶다. 여주 산 깊은 상품초등학교 느타리버섯 같은 아이들도 보고 싶다. 헐렁한 옷에 밀짚모자를 쓰고 땀 흘리는 선생님을 만나 따뜻하고 맑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판화와 서각 작품도 보고 싶고 시 이야기도 더 듣고 싶다. 그러다 산골 깊은 밤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광속으로 살아가던 내가 더 느려진 삶으로 변할 수 있나 혼자 가늠도 해 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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