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통한 날 문학동네 동시집 2
이안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한 것은 동시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아이'에 앞서 '시'가 되지 못하면
'동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 책 머리에서 <이안>

 
이안의 말이 믿음직스러워 시집을 들고다니며
아이들한테 읽어주고 시와 함께 실린 그림도 보여주고 놀자고 한다.

 

동시 <일곱살>은 시가 짧고 말이 재미나서 아이들이 금방 외웠다.
아마 아들 경재를 키우며 아이가 하는 말이 재미있어 그대로 담아둔 시 같다. 

그런데 아이들이 좋아한 시는 따로 있었다.

 

고양이 일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끼고양이였다 세 마리가 종

이 상자에 담겨 풀숲에 버려져 있었다 군데군데 털이 빠졌

고 검불처럼 가벼웠다 집에 오는 길에 한 마리가 죽었다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서 피부병 치료를 하고 집에 와 약

물 목욕을 시켜 주었다 이틀 동안 사료를 먹이고 우유를 먹

였다 마당 여기저기를 조르륵조르륵 돌아다녔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자빠질 듯 약한 다리로

고양이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나. 

 

이 시를 읽어주는데 어찌나 말이 많던지.
시인이 막 걱정하고 있어요.
고양이는 어디갔을까요, 다시 올 거예요.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는
날개가 부러진 참새를 경비실에 맡겨둔 일
다친 다람쥐를 돌봐준 일
고양이랑 놀았던 일....
아이들 말을 들으니 아파트 숲에 사는 아이들 곁에도
아직은 이렇게 자연이 목숨이 숨쉬고 있다 싶어서
아직 여린 목숨들이 기대어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들더니
맘이 먹먹해졌다.
지난 주내내 문제집에 시험지 풀이 하던 사나움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통한 날

 

책 읽는 앞에

고양이가 다가와 앉았다

 

'고양아, 넌 정말 눈이 예뻐

그런데 눈에 눈곱이 끼었네.......'

생각만 했는데

 

고양이가 갑자기 오른발로 왼발로

구석구석 세수를 하곤

고개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눈곱 하나 없이 말끔한 눈으로

 

시를 읽어줬는데 아이들이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나도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성운이가 오른손 왼손으로 고양이 세수하는 흉내를 내고
정인이는 원숭이 세수를 하고.
우리는 아무 말 안 하고
마흔 한 명이 숨을 참던 그 순간이 좋았는데
아마 우리끼리 뭔가 통했던 거 같고.....
 

나중에 혜리가 와서 아기 고양이가 돌아왔나 보다고
고양이는 개하고 달라서 주인을 버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


첫 머리에 시린 시 <냉이꽃>은 임길택선생님 <봄, 쇠뜨기>랑 닮았다.
뒤에 박기범이 쓴 글에
'이안의 시가 먼저 발표되었고, 임길택 선생님의 시는 그보다 먼저
쓰긴 했지만 책에 실려 나온 것은 한참 뒤여다고, 느낌이 닮았다는 건 마음이 닮았
다는 것일 뿐, 아마 봄에 올라오는 나물들을 보면서 임길택 선생님과 안 아저씨 마음이 아주
닮았나 보다'고 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지.

 
냉이꽃

 

야야,

요것이, 요 쪼맨 것 보래이

요 쪼맨 것도 살라고

이래 애를 쓴다야

 

요 쪼맨 것이

그걸 으째 알았으까만

 

나물꾼덜이,

꽃 핀 거는 안 캐고 비키 가니까

이래 바짝 서둘러

피어났다야!

 

아이고, 시 읽고 이래 맘이 환해지니.....  

야야, 참 좋다.

 

2008. 12.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