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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스퐁나무 ㅣ 보름달문고 25
하은경 지음, 이형진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http://blog.naver.com/nara967/45724445
안녕, 스퐁나무
(하은경 글/이형진 그림/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수상작)
가족은 아이들의 삶을 일차적으로 규정한다. 가족이나 형제 자매는 운명과도 같은 존재이다.
선택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존재가 가족이었다.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삶도 어른들의 삶이 변화하는만큼 출렁이고 흔들린다.
그동안 부모의 이혼으로 절망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위무하고 그들의 마음을 다독거린 동화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최나미의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이후로 동화에서는 가족이란 제도가 결코 운명이 아닌 삶의 한 모습이란 걸 이야기하고 있다.
이재복선생님 말처럼 어린이문학에서도 서서히 금기가 사라지고 있고 경계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안녕, 스퐁나무에서도 부모의 별거로 아빠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보게 되는 5학년 남자아이 현이가 나온다.
현이는 생각보다 조숙하다.
엄마 대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아빠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그깟 게 도대체 뭐가 어렵다는 거야? 아빠는 어른이면서!"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무지무지 화가 나 있었다. 아빠가 또 나감한 표정을 지었다.
"삶의 감정이란 게 머리와 같이 움직여 주면 좋을 텐데. 가끔씩 따로 놀려고 할 때가 있거든. 잘못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꾸 그렇게 돼 버려."
"그럼 아빠 머리와 마음이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단 말이야?"
"이를테면 그런 셈이지."
"정말 말도 안 돼."(54면)
현이는 아빠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리지르고 아파한다.
하지만 캄보디아 여행에서 만난 신이누나의 감정을 읽어내고 소통한다.
근데 아줌마는 딸에 대해서 그렇게 모르나! 나는 누나가 왜 그러는지 금방 알 것 같은데, 물어 보나마나 좋아하는 남자 친구 때문일 거다.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니까 막 화가 나 있는 거겠지. 누나는 자존심이 엄청 세서 따지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바보처럼 끙끙대다가 남자를 빼앗기고 말지. 여자를 좀 사귀어 봐서 아는데, 그 정도는 나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어른들은 자기들 생각대로만 판단한다. 왜 만날 사춘기 때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 같아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을 거 같은데(96면)
이런 아들이라면 아빠나 엄마는 싸우기 전에 조근조근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현이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당황하거나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현이와 아빠는 여행을 통해 남자 대 남자로 가슴에 담은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고 포도씨 던지기를 하며 맘 속에 있던 울분을 날려버린다.
현이를 지금 우리의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이가 마치 조숙한 여자아이처럼 느껴진건 뭘까?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아빠의 전화를 받지 않을만큼 참을성이 있는 아이. 도시 중산층에서 잘 관리된 아이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리고 여행에서 만났던 신이도 지금의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쿨하다. 서로 할퀴고 살아가는 부모들을 보며 자기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고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당찬 이야기를 한다. 그 나이 때 나는 하고 뒤돌아보니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성이란 예술적인 의장 속에 존재하는 허구화된 현실이 실제의 현실과 맺고 있는 긴밀함의 정도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 긴밀한 정합성은 존재하는 현실과 존재해야 하는 현실의 날카로운 변증 속에서 획득되며, 이렇게 고양된 현실성이야말로 어린이문학의 그릇된 현향을 교정하는 내적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결국 인물과 서사의 현실성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적이고 계몽적인 계기들을 불식할 수 있는 유일한 내적 준거가 되는 것이다.<어린이문학의 재발견/김상욱/132면>
현실주의 동화들이 가져야 하는 인물과 서사의 현실성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대단히 조숙하고 쿨하게 그려진다. 이들에 비해 어른들은 다 제자리 걸음이다.
대책없이 낭만주의자인 아빠와 종합병원 간호사로 집안의 가장 몫을 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엄마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그 끝에서 화해나 이해 혹은 대화보다는 자기 연민과 눈물과 아픔 속에 지내고 있다.
오히려 아빠와 엄마보다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고 시원하다.
"오로지 네 생각만 해라. 현이 저 녀석은 다 컸고, 아범이야 어디 가서 굶던지 말든지 알 게 뭐니. 오직 네 생각만 해. 그러면 현명해질 거야."(68면)
그 뒤에 이어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엄마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움은 그대로 남는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너야, 누구보다 너를 생각해. 그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야.
참 소중한 말이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이 주는 경전 혹은 경험담이라 하기에는 뒷이야기가 너무 일상적이고 교훈적이다.
이 동화의 또 다른 재미는 여행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을 향해 돌진하는 속도감이다.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힌다.
청소년 문학이나 일반 문학에서도 여행기는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볼때 어린이문학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괴롭히면서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 그게 바로 이 곳 사원과 나무의 관계랍니다. 이 나무롸 사원은 몇 백년 동안이나 이렇게 얽힌 채 버티고 있었다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참 닮지 않았나요? 아니, 우리 삶이 자연을 닮았다고 해야 할까요?
가이드 아저씨 말이 내 가슴 속에서 둥둥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빠를 찾아보았다. 빙 둘러선 사람들 틈에서 키가 껑충한 아빠 얼굴이 보였다.
어! 근데 아빠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또 울려고 하는 거다. 천 년 된 사원과 나무 이야기가 아빠 마음을 울린 걸까? 아빠는 분명히 엄마 생각을 하는 거다.(136면)
여행 중에 가장 크게 성장한 것은 현이다. 자유로운 영혼이야기까지 하는 걸 보면.
하지만 북소리처럼 둥둥 울리는 그 말만이 진실 혹은 현실이라고 말해 줘야 할까?
그게 아니라 서롤 인정하고 받아주는 관계 혹은 더 나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랑의 관계를 모색할 순 없을까?
아무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있자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뭔가 모자란 부분, 자유로울 수 있는 영혼에 대한 탐구를 더 진지하게 이끌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이와 아빠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별을 본다.
오랫동안 별들을 바라보며 다시 꿈을 되찾는다. 추락! 죽음! 그런 공포조차도 이제 더 이상 내 꿈을 잃게 만들지는 못할 거다. 누가 뭐래도 나는 비행기를 모는 운전사가 될 거니까.(179면)
현이와 아빠는 나름대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감정을 추스리며 잃었던 꿈을 되찾는다.
그리고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는 그 이후 상황은 아이들 몫으로 남겨두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열 두살 열 세살 아이들은 어른들의 알 수 없는 세계를 보며 징징거리고 울고 불고 떼쓰는 어른들을 보며 흔들리는 발걸음을 어떻게 옮길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 라고 되물어볼까?
아이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