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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정명공주 - 빛나는 다스림으로 혼란의 시대를 밝혀라
신명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년 6월
평점 :
요즘 MBC 드라마 <화정>으로 인해 17세기 조선왕실의 역사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나는 바쁜 시간 가운데서도 거의 빼지 않고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사연구사로 조선시대의 왕과 왕실문화를 연구했으며,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신명호 박사가 17세기 궁중에서 일어나는 각종 모략과 암투를 사료 바탕으로 세세하게 풀어냈고,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로 정명공주를 풀어냈다. 그녀의 83살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17세기 조선왕조의 권력다툼의 역사도 고스란히 그녀의 일대기를 통해 묻어난다. 숱한 음모 속에서도 정명공주는 어떻게 장수하며 살 수 있었을까? 수많은 역경을 지혜롭게 처신하는 공주로부터 우리는 지혜와 관용의 처세술을 배울 수 있다.
정명공주는 선조가 인목대비와 결혼하고 52세의 나이로 얻은 딸이었으며 동생은 영창대군이다. 오빠 광해군은 어린 동생 정명공주를 보면 ‘이리 와 보라’며 만져 보기도 하고 ‘참 영민하고 어여쁘구나’라며 칭찬을 하며 귀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광해가 왕위에 오른 지 10년째 되던 1618년, 새어머니 인목대비와 열여섯 살 정명공주를 창덕궁 서쪽의 후궁인 서궁에 가둔다. 서궁에 갇혀 절망에 빠진 어머니 인목대비를 위로하기 위해 남자가 쓰기에도 힘에 부친다는 한석봉의 필법을 연마한 정명공주. 그녀가 남긴 작품 ‘화정’이 남아 지금까지 전한다.
‘화정華政’은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뜻이다. 이 두 글자가 공주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공주는 부인의 존귀함으로 겸손하고 공손하며 어질고 후덕하여 오복을 향유하였다.’고 조선 후기 문신 송시열은 정명공주를 극찬했는데, 정명공주가 지혜로운 처세로 모진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오복을 향유하는 노년은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인조반정의 명목상 정명공주와 인목대비는 인조의 후손이 쭉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숙종까지 무난하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있었다. 인조가 저주 타령을 하며 17년간 정명공주를 의심해서 조용히 지냈다고는 하지만 그런 대목 말고는 여려움 없이 조정에서 내리는 무수한 금은보화와 땅으로 후대까지 어려움 없이 살았다.
인조 이후의 효종, 현종, 숙종은 정명공주에게 최고의 예우를 바쳤다. 이뿐만 아니라 83살까지 산 정명공주는 조선시대 공주들 중에서는 가장 장수한 공주였다. 또한 7남 1녀의 많은 자녀들을 두었으며 그 자녀들과 후손들이 크게 영달하였다는 점에서도 오복(五福)을 두루 누린 공주로 칭송받았다.
정명공주와 거의 동시대를 함께했던 조선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우암 송시열도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묘비에 이렇게 적었다. “공주는 부인의 존귀함에 걸맞게 겸손하고 공손하며 어질고 후덕해 오복을 향유했다.” 정명공주는 냉엄한 정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빛나게 다스리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반목과 갈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공생하는 지혜를 배웠다. 특히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들이 읽고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