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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즈음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4년 7월
평점 :
그동안 나는 마광수 교수의 소설은 빼놓지 않고 있다. 물론 그의 소설은 다른 작가의 소설에 비해 상당히 자극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함부로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성(性)과 관련된 단어들을 과감하게 쏟아낸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性)을 좋아하고 즐길 뿐만 아니라 더 쾌락적인 것을 원하면서도 항상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고 감추면서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한다. 그러나 마교수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과감하게 드러낸다.
90년대,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구속되고 교수직에서 해직됐던 마광수 연세대 교수가 <스물 즈음>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마교수가 ‘청춘의 조언자’를 자처하며 내놓은 에세이다. 그의 조언은 현실적이고 솔직해 때론 불편하지만, 대학에서 수많은 ‘스물 즈음’들을 마주한 경험이 발판이 된, 그의 조언 방식은 효과적으로 보인다. 에세이들은 그의 재미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재미도 있다.
이 책을 일어보면 ‘스물 즈음’을 지나온 그 삶의 고찰을 통해 스물 즈음에 우리가 어떤 고민들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 역시 지나온 ‘스무 살’을 되돌아보니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그 시절의 추억들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순수하고 맑았던 그 시절,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다. 하지만 이젠 세월의 흐름에 희망이라는 단어는 점점 퇴색되어 가는 느낌이다. 우리에게 상징적인 시절인 ‘스물 즈음’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꿈과 열정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그의 종교관이 궁금했다. 마침 ‘나는 왜 기독교가 아닌가’에서 열심히 교회에 나가던 그가 무신론자가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인간 예수를 신(神)이라고 믿어야만 하는 기독교 교리에 회의가 일기 시작하던 때 버트런드 러셀이 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종교와 과학>을 읽고 “예수가 신이 아닌 ㅇㄴ간”이라는 러셀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 니체의 ‘안티크리스트’ 등을 읽고 ‘종교’라는 집단무의식이 결국 미신을 닮은 집단적 환상의 산물이거나 정치적 계산이 깔린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된 인간억압의 수단이라는 학신이 들어 나가던 교회를 미련 없이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신념이라는 희망고문’에서는 ‘신념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희망을 가져라’라는 흔한 조언을 비튼다.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신념이 있고 거기에 노력이 따라도 실패하는 수가 더 많다”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강한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 보다는 아예 적당한 체념과 달관된 관조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욱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생각했던 것이다”(p.115)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광수 교수의 솔직 담백함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쉽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본인의 견해를 숨김없이 밝히는 것은 매우 귀하다. 이 책을 지금 스물 즈음인 청춘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스물 즈음’ 그 시절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