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호 여객선 참사가 빚어진 지 어느덧 석 달이 됐다. 수학여행에 들떠 있던 많은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한순간 세상을 떠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이를 아직도 못 찾은 가족들. 그 애끓는 심정을 어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희생자의 부모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오히려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는 2008년 10월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그가 “내 삶의 심장” “내 심장의 생명”이라고 불렀던 아내 팻 캐바나가 갑자기 뇌종양으로 쓰러진 지 37일 만에 사망한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아내의 죽음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줄리언 반스가 세상에 내놓은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은 성격과 장르가 각각 다른 세 가지 글로 이뤄졌다. 1부 ‘비상의 죄’는 19세기 후반에 기구를 타고 하늘을 비행했던 세 명의 유럽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 근위기병대 대령이자 항공학협회 회원인 프레드 버나비, 고혹적인 미모로 당대 유럽인들을 사로잡았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 작가·풍자화가·사진가인 프랑스인 펠릭스 투르나숑이 그들이다. 기구는 인간의 오랜 꿈인 비상의 열망을 실현해준 도구이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체 동력이 없었던 기구는 바람과 날씨가 허용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자유는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였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운명 또한 그러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2부 ‘평지에서’는 1장에 등장하는 프레드 버나비와 사라 베르나르의 사랑 이야기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결국은 헤어진다. 두 사람은 실제로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지만, 작가는 이 가상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때로는 세상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은 추락해 불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타올라서 추락하거나.”
3부 ‘깊이의 상실’에서는 저자인 줄리언 반스가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기구에서 바라본 세상이 평지에서 보이는 세상과 확연히 다르듯 사랑의 환희에 빠진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세상 또한 그 이전과 같지 않다. “나란히 함께 그 최초의 환희에 잠겨 몸이 떠오르는 그 최초의 가공할 감각을 만끽할 때,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그러나 지상으로 내려와야만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운이 나쁘면 안전하게 착지하는 대신 추락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그 옛날, 나다르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카타콤으로 내려갔던 것처럼,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찾기 위해 하계로 내려간 것처럼 내려갈 수 없는, 다시 말해, 상상의 지하세계로 내려갈 수 없게 된 현대인의 운명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