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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즐거움 - 인문학자 김경집의 중년수업, 개정판
김경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막상 나이 드는 것을 체감하면 서글퍼지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자꾸만 옹색해지거나 작은 일에도 서운해지곤 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이런 때 늙음을 한탄하거나 경시하지 말고, 늘 새롭게 살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회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이치를 잊고 젊음과 미모를 숭배하는 이 시대 문화는 많은 부작용을 부를 뿐이다. 외모 지상주의와 성공과 부의 숭배만큼이나 웰빙, 웰빙 외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정신적 허기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 책은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대중인문학 확산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인문학자 김경집이 지인들에게 보내온 편지글을 모아 엮은 인생 에세이로 한 살이라도 더 어려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세상에서 제 나이에 맞춰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저자는 해마다 설날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아 유서를 쓴다고 한다. 아들들에게는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당부하고, 아내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표현하면서 지금 이 순간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서는 괄호 속에 남겨진 과거도, 미래도 아닌 살아 있는 현재를 위한 일종의 자기계약서와 같은 겁니다.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채근하며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랑을 다짐하는 소중한 문서”(p.84) 라고 말한다.
저자는 30년 만에 동문회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금세 교실에서 부비고 섞이며 지냈던 그때로 돌아가서 그 옛날 얼굴들을 추억했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궤적을 모두 잠시 괄호 속에 담아두고 아무런 계산도 애증도 없는 그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흔히 속도를 얻으면 풍경을 잃고, 풍경을 얻으면 속도를 잃는다지만, 이제 우리 나이가 적당한 속도와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나이가 돼서 그럴까. 직선의 속도와 곡선의 넉넉함을 서로에게 베풀 수 있는 행복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세월에 쫓기며 나이 듦을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준다.
무언가 가지고 있으면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돈, 권력, 명예도 언제 어느 순간에 내 손에서 벗어날지 모른다. 저자는 “제 나이에 맞춰 사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행복한 것도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신분에 맞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면, 현재 고통이라고 느끼는 것들은 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인생의 좋은 기회들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또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 대가를 치르기를 꺼리는 사람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도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 순식간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 세월이다. 시간을 잘 선용하기만 한다면 나이 듦이 오히려 축복이 된다. 이 책은 내가 노년의 나이가 되어서까지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