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라 - 샘터와 함께하는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재순 지음 / 샘터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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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잡지를 열심히 읽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샘터를 즐겨 읽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무심하게 책장을 넘겼는데 휴가를 나온 아들에게 해장국을 끓여주면서 양육하면서 얽힌 지난날에 추억을 더듬는 글이 실려 있었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마치 길을 걷다가 우연히 친지를 만난 듯한 즐거움이었다.

 

지금생각해도 잡지 구성이 참신했다. 짤막한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구성하면서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게 하는 책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단순히 독자들의 짧은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화나 시를 비롯하여 다채로운 볼거리가 있었다. 연재소설은 없고, 글들이 시사성이 강하지도 않고 그저 우리네가 살아가는 이야기였기에 재미가 쏠솔했다.

 

이 책은 월간 샘터의 창간인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참된 삶을 사는 지혜에 대해 쓴 책이다. 저자가 샘터뒤표지에 써온 글들을 중심으로 인생과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을 전한다. 그는 아흔에 가까운 지금도 매달 샘터에 실릴 글을 직접 쓰고 하루 세 시간 이상 책을 읽는다고 한다.

 

저자는 죽음은 인생의 종착역이며,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렇다고 죽음이 인생이나 기쁨까지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진정 나의 삶을 사랑하려거든, 삶을 즐기려거든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자”(p.149)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인 천천히 서둘러라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이라고 한다. 40년 이상 로마를 통치한 아우구스투스는 역사상 가장 분별력 있는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모든 일을 심사숙고 끝에 처리하는 신중함을 보인 황제였다. 카이사르가 로마제국의 길을 닦았다면 로마가 이 길을 따라 가도록 이끈 인물이었다. 그의 좌우명은 천천히 서둘러라였다.

 

이 책에는 2011년 대규모 지진을 겪은 일본인들이 엄청난 재난 속에서도 질서가 유지되고, 절도를 잃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데 대해 각국의 취재진이 놀라운 시선으로 보았다는 것을 덧붙이기도 했다.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줄이 아무리 길어도 새치기 하는 이를 볼 수 없었고, 앞다투어 제 몫을 차지하려고 큰소리를 내는 이도 없었다. 번화가의 상점에는 손닿는 곳에 상품들이 즐비한데도 누구 하나 훔치려고 하지 않았다. 재해에 편승하여 물건 값을 올리려는 상인도 볼 수 없었다.”(p.186)고 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2년이 흐른 지금 일본은 급속히 우경화로 기울었고, 주변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다. 또한 원전 오염수 유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아 동북아 지역의 환경적 위기를 확산시켰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일본이 이제라도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성숙한 민주 정치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방향과 목적의식을 잃고 자신이 왜 서두르는지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서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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