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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평점 :
1589년, 조선 선조 때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의 인물들이 모반 혐의로 박해를 받았다. 정여립은 천반산에서 자결을 했고, 대동 세상을 꿈꾸며 만민평등사상으로 조직한 대동계는 해체됐다. 그리고 1,000여명에 이르는 선비들이 목숨을 잃은 역모사건이 기축옥사다.
홍도는 기축옥사 때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은 이진길의 딸이며,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역적으로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정여립의 노비, 자치기가 그녀를 구해주고 둘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은 2013년 혁명가 정여립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던 27살 난 청년 동현이 스스로 433살이라 주장하는 홍도를 비행기 안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핀란드 헬싱키에서 인천공항까지 오는 8시간 동안 홍도는 400년 남짓한 자신의 삶을 동현에게 들려준다. 그 400여 년 동안 홍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천주교 박해를 거쳐 한일합방과 태평양전쟁 등 20세기의 주요 사건들 역시 두루 경험하고 목격한 뒤 21세기 현재를 살고 있다.
홍도는 자신과 평생 사랑을 함께 하기로 했던 운명적인 남자, 자치기를 찾기 위해 400년 동안 세상을 유랑했던 이야기를 동현에게 들려준다. 홍도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상처인 기축옥사에 휘말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는다. 그녀는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으며 400여 년의 시간을 홀로 살아간다. 그녀에게 역사란 늘 반복되는 거대한 슬픔일 뿐이다. 그녀는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어느 땅에서 다시 태어날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돈다. 모반과 전쟁, 권력의 박해 속에서도 홍도는 오직 사랑을 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만약 사백 여년의 목숨이 주어졌을 때, 나는 같은 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그리고 닮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개인의 무력감을 견뎌내며 살 수 있을까. 어쩌면 그 긴 생은 끔찍하고 고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도는 ‘사랑한다’는 그 절실함으로, 애타는 기다림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견뎌냈던 여자, 홍도, 홍도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한 여자의 절실한 사랑은 갈수록 한 없이 가볍고 짧아지는 우리들의 사랑을 돌아보게 한다.
이병천 작가는 “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제발 사실이기를, 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길 만큼 소설 ‘홍도’는 절실해서 좋다.”고 했다. 나에게도 이렇게 홍도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