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인은 보았다! - 개정판
요시다 타이치.김석중 지음 / 황금부엉이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86~94년 ‘한 지붕 세 가족’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MBC에서 방송한 이 드라마는 한 지붕 아래 사는 서로 다른 계층의 세 가족이 펼치는 가족애를 그렸다. 당시만 해도 주택 수가 부족한 데다 아파트도 지금처럼 많지 않아 단독 주택에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기 일쑤였다. 그런데 고령화가 진전하면서 ‘한 지붕 세 가족’보다 ‘딴 지붕 한 가족’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새로운 가족이 나타났다. 부모, 자식이 한집에 살지 않지만, 도보나 차량으로 10~15분 거리에 살면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가족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의식 변화는 지난해 말 서울시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서울시가 노후에 살기 희망하는 자녀와의 동거 형태를 묻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자녀와 함께 살기보다 ‘가까우나 독립된 공간에 따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일본에서 고독사로 사망한 시신은 평균 21.3일 만에 발견된다. 방에서는 악취가 나고 집 안은 당연히 엉망이다. 유족은 이런 방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래서 ‘유품정리회사’라는 신종 비즈니스 업체가 생겨났다. 예전에는 이사를 갈 때 온 가족들이 다 모여 짐을 정리하고 꾸리고 했지만 요즘에는 이사를 대행해주는 이삿짐센터가 그 일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는 고독사나 자살, 살인 등 여러 종류의 죽음 후에 남는 것들을 가족이나 관련된 사람들이 정리하는 것이 아닌 전문가가 뒷정리를 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 최초의 ‘유품 정리인’인 요시다 다이치가 죽음을 맞을 때 옆에서 지켜줄 이 하나 없는 사람들, 뜻하지 않게 세상을 등지게 된 사람들을 위해 ‘천국으로의 이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2002년부터 죽음의 현장을 처리하는 일을 하면서 목격한 고독사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 책에는 유품정리사가 직접 겪은 46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결말이 섬뜩한 일화도 있고, 인생의 쓸쓸함을 되새기는 일화도 있다. 조금씩 다르긴 하나 책 속 등장하는 사자(死者) 대부분은 혼자서 죽었다가 뒤늦게 가족이나 주변 이웃들에게 발견된 경우다.

 

저자는 유품을 정리하면서 담담하게 그들의 마지막을 정리한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흔적, 그 한 톨까지도 모조리 담아내 천국으로 보낸다. 그런데 유족이나 이웃의 행동 중에서 특이한 점은 죽은 사람이 남긴 유품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았던 것이다. 누군가는 아예 현장에 참여하지도 않고 전화 한 통으로 끝내 버리기도 하고, 어떤 누군가는 아내가 죽은 당일에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일이라도 내가 죽으면 내 방의 모든 물건들이 유품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지금 내 옆에 쌓여있는 책과 옷가지 등 소소한 물건 하나하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살다간 삶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내가 가족의 유품을 정리하게 되는 날이 오면 어떤 걸 남기고 어떤 걸 처분해야 할지 고민이 만만치 않을 것도 같았다.

 

누구나 나이를 먹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죽음과 마주했을 때 쓸쓸한 죽음, 고독한 죽음이 되지 않으려면 죽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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