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 1
류은경 소설, 이환경 극본 / MBC C&I(MBC프로덕션)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역사 드라마나 역사소설은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기고 있던 나에게 <무신 1>권이 우연히 주어졌다. 책표지의 정면에 굵고 날카롭게 붓글씨체로 쓰여진 제목을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군마를 탄 병사들의 칼부림과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전쟁이나 싸움 같은 폭력적이고 소름 돋는 스토리보다는 로맨스 소설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그런 이유로 책상위에 올려 둔 채로 며칠 동안이나 본 채 만 채 하고 있었는데, 연휴를 맞아 쉬게 된 월요일아침 특별히 아무계획이 없던 나는 문득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알고 보니 MBC에서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의 원작소설이었다. 드라마를 먼저 한번 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소설을 통해 나의 상상력을 자극 시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커피 한잔을 천천히 내려놓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1200년대의 고려는 최씨 정권이 60년간 대를 이어가며 황제를 대신해서 국가를 통치하던 시대이다. 원래 문벌귀족들이 고려의 정권을 장악하여 권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그들의 향락과 사치, 횡포가 흉흉하여 나라는 혼란했었고, 그 틈을 타 무신들이 일어나 정국을 제압하고 고려를 ‘무’로 다스리기에 이른다. 운문상국의 칭호를 얻었던 최충헌은 고려 무신집권기 최고지배자로 권력을 향유했으며, 권좌를 손에 쥔 그는 명종을 포함하여 신종·희종·강종에 이르기까지 4명의 황제를 갈아치웠다. 그리고 그의 권력은 대를 이어 아들 최우에게 세습되었다.

 

1권의 중반부쯤을 읽으니 드디어 무신정권의 제2막, 최우의 시대가 열렸다. 그는 그동안 아버지 시대에 축적하였던 재화를 국가에 헌납하고 탐관오리들을 엄벌하는 등 과거의 관습과 정치를 일신하였고, 대몽항쟁사에서 민족의 주권과 국토를 지키려는 항전의지가 투철한 그의 모습을 통해 무신중의 무신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전쟁 중에서도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민족적 정신과 혼을 담은 팔만대장경 제조의 실질적 주역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학창시절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실제로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1000여년을 이어온 인류적 문화유산을 남긴 주역이 ‘최우’였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감탄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씨 가문의 이러한 역사적 발걸음에는 중요한 인물이 함께 거론된다. 바로 최씨가의 노예이며 가신인 ‘김준’이라는 사람이다. 실록에도 기록된 역사적 실존인물이라고 하는데, 그가 바로 <무신>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고 있다.

 

노예 신분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무상스님’으로 불리며 어린 시절을 절에서 보낸 김준. 그는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시대적 장벽을 넘어 노예로부터 고려 최고의 벼슬인 문하시중까지 올라가 나라의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온갖 모멸과 수모, 억압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끊임없이 힘을 다하는... 그래서 최우의 측근이 되어 결국 막부정권을 탈취한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고려시대 무신 사나이들의 권력에 대한 야망과 피비린내 나는 생존적 본능, 또 외적에 맞서 나라를 올곧게 지켜 내려는 투쟁정신을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김준의 삶을 더 화려하게 완성시켜주는 사랑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 함께 자란 ‘월아’. 친여동생처럼 여기던 월아와 몇 번의 헤어져야만 하는 위기를 겪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정씨부인(최우의 부인)에 의해 혼인을 성사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김준과 월아의 사랑을 시기하는 이들의 계략으로 월아는 혼인 며칠 전 최우의 아들에게 겁탈을 당해 자결하고 만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월아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김준. ‘파란’이라는 소제목에 그려진 이 장면에서 월아에게 오라비이자 아비였고, 정인이자 은인인 사내였던 김준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아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이제, <무신 1>의 막바지에 이르면 김준은 시작되는 여몽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목불인견의 전쟁터에서 그의 명석한 두뇌와 타고난 무인의 실력으로 맹활약하는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전술과 암투가 거듭되는 전쟁과도 같은 세상 속에서 그의 삶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무신 2>권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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