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는 괜찮다 - 그동안 몰랐던 가슴 찡한 거짓말
이경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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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젖이 적어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분유를 구할 수 있는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쌀을 가루 내어 그것으로 맘 죽 같이 해서 먹였단다. 초등학교 다닐 때 외국에서 보내 준 우유 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배급 받았고, 가끔씩 외국에서 보내준 구제품 옷을 받아 입기도 하였다. 겉이 제법 낡은 겨울 외투는 뒤집어서 다시 입었다. 그것을 일본 말로 ‘우라까이’라고 했었다.

 

나는 전기불도 못 보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피아노는 구경도 못했고 작은 풍금이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날마다 냇가에 가서 멱을 감고, 물고기, 개구리, 뱀 등 무엇이든지 잡아서 끓여 먹었다. 여름에는 소를 몰고 산에 가서 풀을 띁어먹게 하고 내려올 때는 땔감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내려왔다. 배가 고프면 밥을 하기전에 보리쌀을 쪄서 광주리에 담아 메달아 놓은 것을 물에 말아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 때가 행복했다. 지금도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에 갈 때면 어머니와 어렸을 적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은 충청도 산골 외딴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로 지내는 팔순의 친정엄마와 소설가 이경희의 전화통화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듯 생생한 엄마의 목소리를 15년 간 고스란히 받아 적었다. 수화기를 통해, 작가 이경희를 통해 전달되는 엄마의 수다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정겨운 이야기다.

 

이 책의 제목이 너무나 정겹다. <그동안 몰랐던 가슴 찡한 거짓말 에미는 괜찮다> 이 책의 화자인 ‘에미’는 꿈 많던 소녀로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했고, 조혼으로 인한 모진 시집살이와 가난, 전쟁으로 부상당한 남편, 여섯 명의 자식들과 엄마의 개인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팔십여 년을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삶의 지혜를 딸과의 전화통화로 풀어낸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니 아배가 그립다’에서는 충청도 산골 외딴집에 홀로 지내는 엄마가 고추를 말리며, 시동생 집에 다녀와서, 목사님의 심방 등을 추억하며 1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한다. 2장 ‘내 새끼들이 최고여’에서는 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자식들이 서울살이를 잘 하고 있는지 육 남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면서 내 자식들은 몽땅 과장이라고 자랑한다. 3장 ‘에미두 알 만큼은 안다’에서는 안면도 꽃 박람회 갔던 이야기와 읍네 장에 가서 만병통치약을 사 온 이야기 등 노인네들만 있는 시골 풍경을 마을 사람들과의 일화를 재미있게 드러낸다.

 

4장 ‘나두 그런 시절이 있었다’에서는 큰 이모와 전화통화, 큰오매 시집살이, 영감 먼저 보내고 폭삭 늙은 할망구들이 모여앉아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5장 ‘외롭지 않은 것이 워디 있겄냐’에서는 외딴집에서 누렁이 두 마리와 더불어 사는 외로움과 팔순의 나이에 떠올리게 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6장 ‘영정사진 찍으러 간다’에서는 “죽으면 니들이 잘 알아서 장례식장으로 데려갈 테지만, 그리두 내 손으로 산 옷 입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큰맘 먹구 장만힜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엄마를 그리워했다. 엄마와 딸의 전화 통화 내용은 나와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우리 엄마들의 쓸쓸하면서도 정답게 다가오는 사랑스러운 수다가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삶의 지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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