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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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 13기의 첫 책은 <정세에 합당한 연애>였어요. 책을 읽기 전, 제목을 보고 '정세'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봤어요. '주류와 권력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정의내려봤죠. 사회의 주류가 되는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채, 정세를 만들어내니까요.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를 읽으며 아주 중요한 것을 알았어요. 바로 우리나라의 정세에는 '가부장적인 가치판단'이 실려 있다는 것이에요. 결혼을 꼭 해야만 해, 계급이 다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 여성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 여성과 여성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 100년의 간극이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내용이 공감이 가고 이해가 갔어요. 안타까우면서도 '그 정세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나' 하는 답답함도 생겼습니다. 시리즈 소개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는 대표 근대 여성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오늘날 사랑 받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읽는 시리즈예요. '소설, 잇다'의 여섯번째 주인공은 박화성 작가님과 박서련 작가님이셨어요. 박화성 작가님의 소설 <하수도 공사>, 그리고 <하수도 공사>에 영향을 받은 박서련 작가님의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이 두 소설을 나란히 읽으며 근대화 현대가 겹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하수도공사> "용희! 나는 용희를 정말 사랑하고.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게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 때가 많소." / 하수도 공사를 두고 임금체불이 생기며 노동자들은 들고 일어나기 시작해요. 주인공 동권도 그들 중 한 명이었죠. 그가 사랑하는 여인, 용화는 귀족 집안의 영애예요. 동권과 용화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동권은 용희에게 '우리 사랑은 정세게 합당하지 못하다'라고 말해요. 우리 사랑이 왜 합당하지 않느냐 묻는 용희에게 '(신분 차이로)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 이 답에서 독자들은 두 가지 '정세'를 발견할 수 있어요. '노동자와 영애의 사랑은 이루질 수 없어',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 이 두가지는 여느 소설에서도 잘 나타나는 부분이기에 특수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데요. 하나 더 더해지며 이 소설의 방향이 확실히 드러나요. 영애 역인 용희는 그 정세에 빗겨 있다는 것이에요. "결혼만 하면 좋은가? 사랑만 하면 그만이지"라고 말하죠. 이 둘의 관계에서 정세를 따지자면 용희가 아니라 동권이라는 것이에요. 동희는 남성, 용희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죠. 동희가 용희를 정말 동지,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체로 보았다면 그 정세들을 이겨내고서 '사랑'만 했대도,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정세에합당한우리연애> "동권이 정말로 용희를 동지라고 여겼다면, 동등한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느꼈다면 어째서 용희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을까?" / 주인공 림과 진은 연인 관계예요. 이 둘은 독서 동아리를 하고 있고, 그 동아리에서 <하수도 공사>를 읽습니다. 진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여성 총학생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림은 동아리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계를 말하자고 제안합니다. 림은 토론을 하며 진의 눈을 바라보며 말해요.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요. / <하수도 공사>는 계급의 정세가 주가 된다면,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성별의 정세가 주가 되는 소설이에요. '여성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와 같은 것들 말이죠. 여기에 더해 하나의 정세가 더해집니다. 바로 '성정체성'이죠. 진과 림은 레즈비언입니다. 여성 총학생회장이 된 적이 없다는 것과 유력 후보자가 레즈비언임이 나타나면 가지게 될 더한 소수성. 진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지 림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진에게 말합니다. 정세에 합하지 않는 연애는 없다고요. 중요한 건 '연애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 테두리에 있는 다른 말들은 모두 부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정세는 가치 판단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니까요. 절대적인 게 아니니까요. 저는 오늘날 다시 쓰인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가 박화성 작가님의 <하수도 공사>를 완성한다고 생각해요. 동권과 용희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수긍하던 독자도, 진과 림을 보며 알게 될 거예요. 동권이 말한 '정세에 합당한 연애'란 어쩌면 부서질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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