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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평점 :
당신의 글에서는 어떤 맛이 나는가. 백수린 작가의 <다정한 매일매일>에서는 갓 구워진 식빵의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오븐의 온기를 간직한 그 빵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몽실하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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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것은 빵 자체보다는 빵을 만드는 일. 손으로 반죽하고,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시간을, 실패해도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그 시간을 허락하는 일 ❞
베이킹과 글쓰기 모두를 좋아하는 내가 <다정한 매일매일>에 빠져든 것은 어쩌면 불가항력. 이 책에는 빵, 책, 일상이 엮여있다. 백수린 작가는 중학생 때부터 베이킹을 취미 삼았다고 한다. 작가님에게 빵을 굽는 시간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시간, 기다림을 견디는 기쁨으로 시간이었다. 베이킹을 평생 취미로 남겨두고자 하는 것은, 그 시간을 오직 그대로 두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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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이란 한지를 여러 번 접어 만든 지화처럼, 켜켜이 쌓은 페이스트리의 결처럼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
빵에 대한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페이스트리 결로 표현하실 생각을 했을까? 이 빵을 보기 전 사과파이를 만들며 3시간 동안 페이스트리 결을 만들었다. 반죽을 접고 또 접었고, 누르고 또 눌렀다. 사람의 마음도 아무런 이유 없이 여러 겹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리라. 무언가가 덧대어지고 또 덧대어져 모여 만들어낸 흔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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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베이킹을 하고 있다면 그건 시간이 남아 돌기 때문은 결코 아니니까. 잘 써질 때는 또 너무 잘 써진다는 이유로 일상은 쉽게 방치된다. ❞
때는 중요한 면접을 나흘 앞둔 상황이었다. 날 옥죄는 것이 너무 많았는데, 베이킹이 하고 싶더라. 그래서, 그냥 그 모든 걸 내려놓고 베이킹을 했다. 말없이 버터를 풀고, 밀가루를 넣어 반죽을 만들었고 구워냈다. (물론... 계량을 잘못해 달지 않은 쿠키가 탄생하기는 했다...) 그때 나는 왜 베이킹을 하고 싶었을까? 그 당시에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작가의 말에는 빵과 책 모두가 허기를 채우는 것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그것이 마음의 허기든, 배고픔의 허기든 간에. 내가 베이킹을 하던 이유도 내 안의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베이킹을 할 때면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을 받고는 했으니까. 날 속박하던 것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자유를 느끼는 것 같았으니까. 그 느낌이 좋아서 내가 베이킹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면접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을 때 나도 모르게 베이킹을 하고 있었던 이유도 말이다.
베이킹을 하고 나서 내가 먹는 일은 잘 없었다. 전부 남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다. 그것도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일일인 것 같다. 내가 베이킹과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 그곳에서 팔던 투박한 팬케이크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슬픔인 듯, 기쁨인 듯 입안에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담담하고 부드러운 삶의 조각들은 소설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
이 부분은 켄트 하루프의 <축복>과 함께 즐기면 좋을 빵으로 '팬케이크'를 추천하는 부분이다. 이 소설과 빵이 왜 잘 어울리는지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큐레이팅 해준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좋다. 소설과 빵을 즐겨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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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길 바라게 되는 것은 붕어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붕어빵은 낱개로 살 수 없고 누군가와 나눠 먹어야만 맛있는 음식이니까. ❞
나는 붕어빵을 좋아한다. 겨울이 되면 붕어빵을 꼭 먹는다. 붕어빵 찾아 삼만리를 한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붕어빵을 먹을 때는 늘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다. 혼자 먹는 붕어빵은 그다지 맛이 없었다. 줄곧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붕어빵을 좋아한 이유는 누군가와 나누어 먹을 때의 온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붕어빵이 겨울에 더욱 유행하는 이유도. 겨울은 따뜻함이 필요한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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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첫 번째 산문이다. 작가가 사랑하는 것들을 모아 만든 산문이다. 그래서일까. 책 제목처럼 '다정한 책'이 탄생했다. 소설과 함께 즐기면 좋을 빵들도 소개되어 있고, 소설에 나온 빵과 이어진 에피소드들도 적혀 있다. 빵과 소설, 일상이 잔잔하게 이어져 있다. 생일선물로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