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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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점(交差点):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친 곳

<천사가 날 대신해>는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글을 한 책에서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리즈다. 이번 책의 주인공은 김명순 작가와 박민정 작가였다.

김명순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 근대 여성 소설가로 여겨진다. 이 책에는 그녀의 대표작인 <의심의 소녀>, <돌아다볼 때>, <외로운 사람들>이 실렸다. 김명순 작가와 연결된 현대 작가는 박민정 작가다. 박민정 작가는 현대 여성이 처한 공포와 소외를 드러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김명순 작가의 영향을 받아 쓰여진 소설 <천사가 날 대신해>와 소설 잇다 시리즈에 참여한 후기가 적힌 에세이 한 편이 실렸다. 여기에 두 작가와 작품에 대한 박인성 문학평론가의 해설까지, 짜임이 아주 훌륭하다.

김명순 작가의 소설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의심의 소녀>다. 1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소설인데 임팩트가 상당했다. 소녀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중에 풀리면서 소설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부분이 박민정 작가의 <천사가 날 대신해> 속 세운의 죽음을 찾아가는 모습과 비슷해보였다. 이 둘의 에피소드가 사회와 연결된다는 점도 좋았다. <의심의 소녀> 속 주인공 범례는 불륜으로 엄마를 죽게 만들었으면서 이제와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아빠를 피해 시골 마을로 왔다. 범례의 할아버지는 아빠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오자 다급히 마을을 떠나버린다. 아마 범례는 계속해서, 내내 그렇지 않을까. 이것은 범례라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다. <천사가 날 대신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의 폭력으로 여성이 죽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의심의 소녀>에서 가해자가 남성이었다면 <천사가 날 대신해>에서는 가해자의 위치에 여성이 서며,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또 얼마나 큰 공포를 몰고 오는지를 보여준다.

인상 깊었던 것은 박민정 작가의 에세이와 박인성 평론가의 해설이었다. 이 두 글이 실림으로서 시리지의 정체성이 명확해진다. 박민정 작가의 에세이를 통해서는 독자가 <의심의 소녀>와 <천사가 날 대신해>를 번갈아 읽으며 느낀 기시감(작가에 대한 관심/호러/호기심)이 무엇인지 구체화해주고, 박인성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서는 <외로운 사람들>과 <천사가 날 대신해> 속 소녀병과 여성의 외로움, 공포, 한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더 깊은 사유가 가능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책이 고심해서 나온 것이 한 눈에 보였다는 것이다. '소설 잇다' 시리즈 첫 기사를 봤을 때부터 작가정신이 이 시리즈 기획에 열과 혼을 쏟아부었음을 느꼈다. 총 10권이 나온다고 했는데, 첫 기사부터 7권의 라인업이 떴기 때문이다. 어떤 근대 여성 작가와 어떤 현대 여성 작가를 엮어야 할지 이미 고민을 끝냈으며, 그 작가들에게 동의를 구했고, 이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획부터 촘촘히 잘 짜인 시리즈였으니 책도 좋을 수밖에.

어떻게 하면 가독성이 좋을지, 전달력이 좋을지 고심해서 나온 것이 보였다. 첫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① 편집부에서 나온 '이 책에 대하여 (aka 소설, 잇다 시리즈 설명서)'로 시작해 차례에서는 양 옆에 두 작가의 작품을 배치해두고, 중간에 해설을 적어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확실히 보여준다. ② 책의 여백이 넓고 글자 크기도 커서 부담스럽지 않다. 이게 정말 좋았는데 근대 작가들의 작품에는 옛말과 사투리가 섞여 있어 각주가 많이 달린다. 풀어서 적으면 소설의 글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약간의 부담을 주게 되는데, 이걸 넓은 여백과 큰 글씨로 해소한다. 행간도 넓어 어렵지만 차근차근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③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러두기가 필요한 경우, 세세히 적혀 있다. 이건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이 책에서 신뢰도 또한 중요한데, 어떤 이유에서 이 두 작가를 엮었는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의 세세한 부분들이 이 책의 신뢰도와 완성도를 높인다. (작가정신 체고????)

이 책은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다르고, 또 비슷한 두 작가의 이야기를 한 책에서 만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한다. 무엇보다 근대 여성 작가의 글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니 참고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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