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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말 장례식 ㅣ 문학동네 동시집 96
김성은 지음, 박세은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한 때 동시도 끄적거리던 나는 시보다도 동시를 쓰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천진함과 순수함과 깊은 마음의 사이, 그 사이를 잘 파고 들어야 성공적으로 맺을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장르인 것 같다. 이 시집을 읽으니 비유와 귀여운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진 동시집은 많지만 이렇게 여운이 남는 동시집은 오랜만인 것 같다. "귀하께서 들어 놓은 말보험에서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말을 제공해 드립니다. 계약 내용에 따라 딱 열 마디만 할 수 있으며 어떤 말을 할지는 자유임을 알려 드립니다."(<말의 장례식> 中) 이렇게 시를 끝낸다고? 아 진짜 여운이 짙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시간이 미래에서 너에게 오고 있다면> 이라는 제목도 좋지만 '눈을 감지 않는다면 /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면'으로 끝나는 결구도 너무 좋다. '단풍나무 어린 가지로 / 피리를 만들어 불면 /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대 …… 솔직히 나는 믿을 수 없었고 /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 어제까지만 해도' (<단풍나무 피리> 中) 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가 이 시 전체를 감싸 안으며 끝난다. '신났었지, 네 손이 참 따뜻했거든' (<굴다리> 中)에서도 여운이 짙게 느껴진다.
어른이 읽어도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은 참 좋은 동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