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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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삶과 그가 고민해 온 논리학에 대해서 만화로 풀어나간 아주 기발한 책이다.


3가지 다른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면서 진행되는 옴니버스 구조? 이다. 3가지 다른 이야기 축이 교묘하게 서로 이어져서 발전하고 교류하고 서로 잇대어 있다. 샵 in 샵 형태랄까. 또는 내용에서 주요 논란거리인 자기언급 구조가 이 책에 그대로 구현되었다.


그래서일까 무척 어렵고 골치 아픈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책은 술술 잘 읽힌다.(깊이와 내공이 없어서 아무 생각이 없는 나의 무식함 때문일지도..ㅠ)


이야기 구성과 내용전개 방식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러나 주제가 너무 어렵다. 수학과 논리학, 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이해가 없다보니... 언급되는 단어의 개념조차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좀 더 현대철학의 논리전개에 대한 이해가 이뤄진 다음에 다시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나의 무식함과 근원적 성찰이 없음이 아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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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 변산농부 윤구병과의 대화 이슈북 4
윤구병.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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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 변산농부 윤구병과의 대화>, 윤구병/손석춘 지음




윤구병 선생은 예전에 <보리 국어사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이후 우리 아이들 책을 고르다가, 보리에서 나온 계절 그림책 내용이 좋아서 사면서 다시 이름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짧은 인터뷰집이다.


실제 주고받은 대화를 옮겨서 문장의 호흡이 짧고, 구어체적이지만, 제대로 그 의미와 행간을 이해하려면 내공이 좀 필요하다.




일단 일독했는데, 현재로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공자의 '정명正名'에 대해서 '말길을 바로잡겠다'라고 해석하는 대목.



지금 우리말이 계속해서 없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좋은 말들, 꼭 삶에 필요한 말들이 전부 없어지고 힘 있는 나라들의 말이 득세하고 있어요.


세 나라 시대(삼국시대)부터 힘 있는 사람들이 더 힘 있는 중국에서 말을 들여와 우리말 질서를 다 흩뜨려놓고 우리의, 섞임이 없는 정말 쉽고 소중한 말들을 다 없애는 데 큰 몫을 했잖습니까?


흑석동이나 현석동 같은 말을 들을 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있어요? 하나도 없잖아요. 우리말로 감은 돌이라고 부르면 물이 감아 도는 모습이 떠오르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먹물들이 토박이말을 한자말로 바꾸면서 상상력을 다 죽여버린 거에요. 힘센 나라, 힘센 말들을 들여와서는 우리 상상력을 전부 죽이고 구체성을 없애버린 거란 말이죠. 


'말길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세 살배기 애도 알아듣는 말, 시골의 까막눈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알아듣는 말로 이야기를 나누자는 겁니다. 구체성이 있고 우리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드러날 수 있는 쉬운 말을 써야 해요. 그렇게 말이 민주화돼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정치가 민주화되고 경제가 민주화될 수 있습니다.







교육의 궁극 목표라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생명체니까, 살아야 하니까,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한다는 것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에요. 의식주 문제를 머리 굴려서 해결하지 못하잖습니까. 몸 놀리고 손발 놀려야 해결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몸 놀리고 손발 놀리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농사짓는 사람이고, 호주에서 소 키우는 사람이고, 이 사람들 것을 어떻게 하면 머리 굴려서 뺏어 먹을까, 그 궁리만 시키잖아요.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스스로 몸 놀리고 손발 놀려서 제 앞가림을 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궁극 목표인데.


그리고 사람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잖아요. ... 사람은 저마다 도와서 부족한 것을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데, 한 가정이 기초단위라고 하지만 한 가정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길은 아무것도 없어요. 적어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공동체가 이루어져야 여러가지 나눌 수 있는 길이 생기는데, 서로 도와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다만 균형이 깨져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옛날에는 아홉 사람, 열 사람이 땀 흘려 일해서 한 사람을 먹여 살려야 했는데, 지금은 한 사람이 땀 흘려서 열 사람, 스무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이러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후손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려면 머리 쓰는 시간을 하루에 세 시간 이하로 줄여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정치의 주체이자 경제의 주체이자 문화의 주체이자 예술의 주체입니다. ... 하루 두 시간, 세 시간만 머리 쓰게 하고 나머지는 몸 놀리고 손발 놀리는 시간으로 돌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방학을 넉 달로 늘리고 작금의 대학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할 때 그의 어조는 진지했다.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가서 그곳에서 인생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는 '변산농부'의 사고에 일관되게 흐른다.






어떻게 보면, 급진적이기도 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촌뜨기 같기도 하지만...

뭔가 울림이 있다.


정치를 말글살이와 연결짓는 것도 굉장히 독특한 직관이 번뜩인다.

책상물림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며, 현실에 뿌리박힌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신선하다.


생각이 딱딱한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게 신기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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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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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황교익



내가 매일같이 먹고 마시는 것들, 나의 몸을 이루고, 내가 살아갈 힘을 주는 음식에 대해서 늘 궁금하던 차에...

황교익 선생을 CBS 라디오에서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입담 못지않게 글 쓰는 솜씨도 꽤한다.






젊은이들의 거리에 가보면 꼭 있는 불닭집, 매운 떡볶이집, 불냉면집 등등

인생이 심심해서 그런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걸까, 그만큼 우리가 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젊은이들이 무의식중에 몸으로 표현하는 걸까?



쉬엄쉬엄, 그때 그때, 생각날때마다 꺼내서 한 꼭지, 두 꼭지씩 읽었다. 

읽다보니, 나도 그렇고, 요즘 세대,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부 하나, 콩나물 하나, 순대 하나... 어느 것 하나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없다. 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걸 좋다고 먹고 있다. 


모르니까, 원래 그 음식 맛을, 그 재료의 본래 모습을 모르니까 그냥 먹고 사는 것일테다.

공장식 분업화와 대량생산으로 풍성해졌지만, 풍족해진 만큼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오리지널을 모르니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뭐가 문제인지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형성되지 못한다.


이에 더해, 이 책은 음식과 맛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오해들, 편견들을 바로 잡아주고 '원래 그 음식은 이런 거야' 라고 정곡을 찔러준다.



그래서 이 책은 맛난 집을 찾는 식도락 기행기나, 맛난 음식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잃어버린, 우리가 놓쳐버린 삶에 대해서 '맛'이란 안경을 끼고 썰을 푸는 이야기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아련하다. 

아련한 그 옛날 우리 할머니의 부엌과 마당, 가마솥이 떠오른다.





책 말미에 나오는 <젖> 이라는 글이다.



<젖> 사랑이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먹는 음식이다. 밍밍하고 느끼하고 비릿해 속이 울컥 치밀어 오르게 하는 맛이다. 


어미가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인간끼리 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한 접촉이 이루어진다. ... 이런 접촉이 얼마나 평온한 것인지 아이는 안다. 젖떼기의 어려움은 이런 완벽한 접촉이 사라짐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젖을 떼고 난 다음에도 얼마간 아이는 이 사랑을 먹는다. 어미는 밥알을 꼭꼭 씹어 입 안에 넣어 주고, 생선 살을 발라 주고,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밥 위에 반찬을 올려 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 사랑은 차츰 희미해지고 그냥 영양 덩어리나 맛으로 음식을 먹게 된다. 뭔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사랑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이다. 끼니로서의 음식,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 서글프고 처연한.


결국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은, 먹고자 하는 것은, 젖과 같은 사랑이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 타이핑한 부분을 보았더니, 엄청 많다. 그만큼 책 내용이 곱씹어보아야 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리...





<들어가며>


내 안에 들어오는 음식을 좀 더 깊게 느끼고 싶었다. 그 느낌의 흔적들이다.




<소금> 짠맛만 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소금'이란 소금 그 자체의 맛이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서는 안 된다. 그런 식의 맛있는 소금은 인공으로 얼마든지 제조할 수 있을 것이다. 소금의 노릇은 음식 재료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는 것이 그 핵심이다. 잡다한 맛이 없으면서 짠맛이 부드러운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이라 할 수 있다.



<고추> 통증도 맛이다


외식업체들이 이 통증의 감각물을 남용하는 버릇...

한국 음식에서 매운 음식이란 그 음식 전체가 매운 성분으로 처발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음식 전체에 풀어 덩어리든 액체든 똑같은 강도의 통증이 느껴지도록 조리한다. 


고추장불고기, 고추장낙지볶음, 배추김치, 매운탕, 김치찌개, 떡볶이 등등. 매운 통증을 강렬하게 즐기기에는 그만인 조리법이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고기나 낙지, 배추, 생선, 떡 같은 주요 재료의 맛이 어떤지 파악할 감각의 여유가 없어진다. '무데뽀'의 음식인 것이다. 


가끔 다른 나라 음식에서 화룡점정으로 들어가 있는 맵디매운, 청양고추보다 몇 배나 매운 고추를 발견할 때면, 우리 민족의 '무데뽀' 고추 사랑을 일종의 집단적 정신질환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참기름> 단 한 방울로 모든 맛을 평정하는 한국 음식의 독재자


슴슴한 고사리나물에, 달콤한 콩나물무침에, 쌉쌀한 도라지나물에, 시원한 무나물에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후각으로 느끼는 맛은 거의 같아진다.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불에 구워 참기름 찍으면 맛이 똑같아진다. 이런 까닭에 참기름은 한국 음식에서 폭군이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재자이다. 참기름이 한국 음식 맛의 다양성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화학조미료> 싸구려 식재료를 숨기는 악덕 마법사


화학조미료의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하질의 재료이든 최고급의 재료이든 이 화학조미료 한 방이면 맛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화학조미료는 그 자체로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식재료들 제각각의 맛을 뭉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맛들의 중간에 서서 조절을 한다. 이것저것 양념을 넣었는데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고민일 때 화학조미료 한 숟가락이면 모두 해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짜고 매운맛을 음식의 중심에 두고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 한국 음식에 화학조미료는 '맛의 조절자'로 항상 유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음식에서 화학조미료를 버리자면 짜고 맵고 강한 양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심심하고 순하게 먹으면 화학조미료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수라> 왕이 먹어도 밥인 것은 같다


수라의 구체적인 기록은 일제 강점기에 작성이 되는데 일제가 조선의 왕가를 흡수하면서 조선 왕가의 법도도 일본 왕가의 법도에 따르도록 한 이후의 일이라 그 기록들이 조선 왕가만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현재 전하는 궁중음식이란, 정확히 하자면, "일제하 조선 왕가의 음식"이라 해야 맞다. 여기에 더해, 현재 재현되어 있는 수라가 한국 음식의 적통인 것처럼 말하지만 한 줌도 안 되는 조선 왕가의 음식을 한국 음식의 전형으로 세우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조선의 왕이 수라를 받았을 때의 예의에 대해 전하는 말이 있다. 상 위에 차려진 음식의 재료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상궁이 일일이 이르면 왕은 그 음식들을 먹으며 그 산물을 생산한 백성들의 노고를 가슴에 새기면서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어의 눈물 같은 이야기이지만, 음식을 대하는 예법만 보자면 인간이면 누구든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걸식> 가장 처연한 음식


부랑자들은 모여서 밥을 먹지 않는다. 벽을 보거나 서로 멀찍이 떨어져 식판의 밥에만 집중한다. 식판을 싸안고 있는 자세는 먹이를 낚아챈 육식동물이 그 먹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으며 아무 데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인간이 먹는 음식 중 가장 동물적이며, 처연하다.




<돼지갈비> 간장과 설탕 타는 맛으로 먹는다


돼지갈비는 돼지의 갈비로만 조리되지 않는다. 넙데데하게 펼 수 있는 돼지고기의 거의 모든 부위가 돼지갈비로 구워진다. 닭갈비처럼, 쇠갈비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이 투영되어 이름만 그리 붙은 것이다. ... 음식 이름을 바로잡자면, 돼지양념구이가 맞다.


양념은 간장과 설탕(과 물엿)이 기본이다. ... 돼지갈비 굽는 향을 돋우기 위하여 이미 불기운의 맛을 가지고 있는 캐러멜 시럽을 넣는 일이 흔하다. 캐러멜 시럽은 돼지고기의 희멀그레한 살색을 숨기는 역할도 한다. 설탕에 물엿, 캐러멜 시럽까지 더해지면 돼지갈비는 번질번질해지고 불판에 찐득한 잔여물을 남기는 지경에...


질 떨어지는 돼지고기일수록 양념은 강해지고 숙성 시간은 길어진다. 신선하고 잡 내 없는 돼지고기는 흐릿한 간장에 조금의 설탕과 파, 마늘, 참기름, 과일즙 정도 양념을 하여 두어 시간 재워 구워도 맛있다.





<계삼탕> 닭이 주연이고 인삼은 조연일 뿐


흔히 삼계탕이라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이렇게 음식 이름을 바로잡아 놓고 보면 이 음식 맛의 중심이 보인다.




<비빔밥 2> 고추장이 없어야 나물 맛이 드러난다


옛날에는 가정집에서 이렇게 익힌 나물로 비빔밥을 해 먹을 때 고추장을 더하는 일이 없었다. 추측하건대, 비빔밥이 식당에서 팔리면서 고추장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나물들 각각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니 고추장으로 맛을 얼버무리기 위한 술책으로 밖에 안 보인다.


비빔밥의 나물들을 제대로 조리해 내자면 보통의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 공력을 고추장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 <아내> 내 미각 세계의 조정자 : 글이 압권이다.


내 미각 수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 아내 앞에서는 맛 칼럼니스트라는 권위를 잃는다. 그녀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입맛을 단련해 온 탓이다. 그녀는 내가 어떤 음식에 민감하고 어떤 음식에 둔감한지 잘 알고 있다. 또 어떻게 하면 내 미각을 속일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음식 세계 안에서 조정을 당할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기 전에 나는 내 어머니의 음식 세계 안에서 살았다. 결혼 후 일정 기간 동안 어머니의 음식 세계와 아내의 음식 세계가 충돌하였는데, 나는 어머니의 음식 세계에 안주하려 하였고 아내는 자신의 세계로 들어오지 않는 나를 이런저런 음식으로 어떨 때는 달래고 어떨 때는 윽박질렀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어머니는 이제 음식 하는 것도 귀찮아하시고 내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 당신의 며느리에게 맡긴 것이다. 나는 이 두 여자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수와 같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먹이는 음식만큼 사랑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일 것이다.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이런 애착은 어머니가 부재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바로 곁에서 매일 먹을 때는 모른다는 말이다. 아내의 음식도 그럴 것이다.


아내가 단지 내 미각만 조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 어머니가 어린 나를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아내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해서 먹인다는 것은 곧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일이다. 이것은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의 행위이다. 아내가 내 삶의 조정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권위는 이 사랑이 부여한 것이다.







<잔치국수> 대접하는 정성은 사라지고 싼 값과 싼 맛만 남았다


싼 가격의 잔치국수라고 함부로 맛을 내는 경향이 있다. 맛있는 잔치국수는, 제대로 된 국물과 국수를 만들어 내자면, 돈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떡볶이> 떡을 이용한 음식이 아니다


색깔이 고추로 인해 붉기는 하지만 맛에서는 단맛과 짠맛이 매운맛보다 더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편이다. 


떡볶이의 주요 소스는 고추장이다. 이 고추장에는 설탕이 듬뿍 들어가 있다. ... 이 당도에 맞추려다 보니 소금 간도 센 편이다.


달고 짜고 매운맛만 있으면 맛에 빈 공간이 생긴다. 이 세 가지 맛을 서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감칠맛이다. 

멸치나 새우, 버섯 등을 이용해 핵산의 맛을 더해야 한다. 그러나 떡볶이는 저가의 음식이다 보니 감칠맛을 내기 위해 화학조미료에 기댈 수밖에 없다.


떡볶이에서 가래떡 맛은 중요하지 않다. 쫄깃한 식감만 제공하면 그 기능은 끝난다. 그래서 떡볶이는 '떡을 이용한 음식'이라기 보다 '고추장과 설탕을 이용한 음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순대> 돼지의 피 맛에 달렸다


신선한 돼지 피를 익히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난다. 신선도를 잃은 것은 익혀도 쇳내가 심하다. 따라서 순대의 맛은 바로 이 돼지 피의 선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신선한 돼지 피에 깨끗하게 씻은 돼지 작은창자를 쓴다고 해도, 마늘과 생강, 참기름 등을 더한다고 해도, 돼지의 피와 창자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비린내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이 비린내는 모든 동물의 피와 내장에 있는 것이다. 이 냄새는 죽음을 연상케 할 수도 있고 사냥꾼으로서의 인간 본능을 자극할 수도 있다. 순대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과 강한 기호도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배추김치> 가난한 양념이 깊은 맛을 낸다


옛날 우리 배추김치들은 가벼운 양념에 물이 축축하게 있고 개운한 산미가 잘 살아 있었다. ...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을 넘기면서 양념 범벅의 배추김치로 변해 갔다. 


식당에서 보면, 제일 많이 남기는 반찬이 김치이다. 흔해서? 아니다. 맛없어서 안 먹는 것이다. 배추김치 하나 제대로 담그지 못하면서, 아니 요즘 배추김치야 공장에서 다 사 오니까, 맛있는 배추김치 하나 고르지 못하면서 어떻게들 한국 음식 장사들을 하는지 참 놀라울 때가 한두 번 아니다.





<커피> 신맛, 쓴맛, 단맛의 밸런스이다


맛의 범위를 좁혀 보면 신맛, 단맛, 쓴맛 이 세 가지 맛의 배합에 기댈 뿐이다. ... 여러 향들은 이 세 가지 맛의 배합에 '양념'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커피가 뜨거울 때는 맛 성분의 활동이 심하여, 신맛, 단맛, 쓴맛의 밸런스를 짐작하기 어렵다. 커피가 식었을 때에야 그 커피의 맨얼굴을 대할 수 있다. 또 이때면 썩은 원두 냄새, 커피의 탄내, 금속성의 속껍질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커피가 강배전으로 쓴맛만 내는 것은 커피가 식었을 때에조차 그 잡내들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커피 맛이 다양하다고 해서 신비한 그 무엇이 있는 양 환상을 불어넣는 것은 장사꾼들의 술책이다. 커피에 대해 문화적 시각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서구 문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식민지 근성이 가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필 일이다.




<막걸리> 라이스와인이 아니다


막걸리 맛의 중심은 쌀이 지니고 있는 구수한 향과 약간의 단맛, 누룩 발효에 의한 시큼함 그리고 톡 쏘는 탄산가스의 조화로움에 있다.


막걸리는 와인과 맛의 중심이 전혀 다른 술이다. 막걸리 세계화한다고 와인 소믈리에에게 막걸리를 감별케 하는 것은 어색해 보인다. 좋은 막걸리 맛은 시골 할아버지들이 더 잘 알 수 있다. 와인 잔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는 것도 맞지 않다. 막걸리가 마르면서 잔에 남기는 얼룩은 흉하다. 백자가 맞다.





<콜라> 죽음의 향내가 난다


탄산가스를 다 날린 콜라에서는 단맛 외에 씁쓰레한 낙엽 냄새 같은 것이 나는데 숲이 생명을 다하면서 내는 향처럼 느껴진다. 여러 향료에서 얻은 향일 것이다. 


강한 중독성을 일으키는 음식에서는 대체로 '죽음의 향'이 난다.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기 전 백만 년이 넘는 동안 사냥꾼으로 살면서 맡아 온 '죽음의 향'에 무의식적으로 강한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다. 콜라 안에도 이 '죽음의 향'이 있지 않나 싶다. 그러지 않고서는 전 세계인들을 이렇게 중독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자장면> 옛날 자장면은 없다


밀과 콩에 황국균을 넣고 띄운 중국식 된장(춘장)을 기름에 볶다가 고기와 각종 채소를 넣고 익힌 후 삶은 면 위에 올려 비벼먹는 음식이다.


요즘 춘장은 공장에서 만든다. 본래 춘장은 2년 정도 발효해야 하나 요즘은 속성으로 낸다. 짧은 발효기간으로 색깔이 나지 않으니 캐러멜을 넣는다. 맛을 더하기 위해 조미료를 첨가하기도 한다. 기름도 바뀌었다. 동물성 기름이 몸에 나쁘다는 말이 번지면서 식물성 기름이 주로 쓰인다. 이런 사정들로 자장면의 맛은 흐리멍덩해지고 말았다.


춘장은 우리의 된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음식이다. ... 콩 외에 밀이 들어가 단맛과 떫은맛이 난다는 점이 차이인데, 이런 맛은 경상도와 강원도 지방의 막장과 비슷해서 우리 음식 역사에서 전혀 색다른 것은 아니다. 


요즘 자장면은 너무 달다. 공장 춘장이 충분히 달게 나오는데도 주방에서 또 설탕을 첨가한다. 춘장의 큼큼한 발효 향과 돼지기름의 고소한 맛을 단맛이 가리고 있는 것이다.





<스시> 밥이 중심에 서야 한다


스시는 더하는 부재료에 따라 수만 가지가 만들어질 수 있으나 그 수만 가지의 변화에도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것은 밥이다. 밥이 스시의 중심인 것이다.


일식집에서는 밥보다 부재료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스시를 입 안에 넣고 맛을 보면 밥은 부재료의 맛을 부풀려 주거나 줄여주는 보조적 역할을 더 크게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시를 즐기는 입장에서도 밥보다는 어떤 부재료를 어떤 식으로 조리했는가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밥의 맛을 수시로 놓친다. 스시의 중심이 밥임에도. 이는 한정식에서 밥을 소홀히 하는 습성과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생선회> 회 치는 방법이 다르면 먹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생선을 날로 먹는 것을 생선회라고 한다. 생선회는 먹는 방식에 따라 크게 일본식과 한국식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대중 횟집들이 회를 내는 방식은 일본식과 한국식이 섞여 있다. ... 모양새는 일본식을 따라 고급화하려고 하고 맛은 우리식을 버리지 못해 이런 어정쩡한 스타일을 만든 것이다. 


일본식은 회를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므로 한 점이 한입에 꽉찬다. 이런 식은 생선 그 자체의 맛을 즐겨야 한다.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옅은 양념장에 찍어 생선의 육즙이 온 입 안을 감싸게 하는 것이 좋다. 이 두툼한 생선을 상추 위에 올려 마늘, 풋고추에 된장을 발라 먹으면 맛이 없다. 


씹는 맛으로 치자면 막회가 최고다. 뼈째 총총 썰어서 채소와 함께 비벼 우걱우걱 씹는 맛. 이런 막회는 와사비 간장으로 먹으면 맛이 안 난다. 그러니까 일본식이 낫다 우리식이 낫다가 아니라 회를 치는 방법에 따라 먹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진상품> 공출일 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진상과 공물의 내용을 보면 그 지역의 것이 특별히 맛있어 임금이 친히 찾았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중앙이 필요하니 그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을 거두어 갔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 지역에서 궁궐에 진상을 많이 하였다"고 자랑하는 것은 "우리 지역에 가렴주구가 횡행하여 백성이 굶주리고 도탄에 빠졌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의 특산물은 그 지역의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며, 생산자들의 땀이 서린 노동의 산물이다. 이 신성한 물품에 조선왕가와 지배계급의 탐욕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덧씌우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간장게장> 장에 넣은 게가 아니라 게를 넣은 장이다


간장게장은 원래 보름 이상 삭혀서 먹는 음식이다. ... 꽃게의 생살 맛은 사라지고 간장과 꽃게가 서로 어우러져 발효한 제3의 맛을 내게 된다. 꽃게의 살이 녹아든 간장은 귀한 양념으로 쓰였다. 애초 이름이 '장게'가 아니고 게장인 까닭도 '장에 넣은 게'가 아니라 '게가 들어간 장'이기 대문이다.


요즘의 간장게장은 이렇게 먹지 않는다. 간장에 이틀이나 사흘 삭혀 낸다. 하루 만에 내는 간장게장도 있다. 꽃게의 살은 생생하게 살아 있고 발효 향은 없다. ... 간장게장의 맛이 이렇게 바뀐 것은 싱싱한 꽃게를 유통할 수 있게 된 이후의 일이다. 싱싱하지 않은 꽃게는 단기간의 숙성으로는 비리기 때문이다. 


간장게장은 발효의 맛을 버리고 싱싱한 꽃게의 생살 맛이 중심인 음식으로 변했다. 양념게장도 원래는 삭히는 음식이었으나 양념은 그대로이면서 생으로 먹는 음식으로 변했다. 꽃게무침이다. ... 요즘 간장게장은 발효 음식이라 하긴 미흡하므로 꽃게간장절임이라 부르는 것이 맞겠다.





<과메기> 숙성되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꽁치 말린 것을 과메기라 한다. 밤낮의 일교차에 의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보름 이상 숙성이 된다. 


과메기는 어떻게 제조되는가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최하질은 공장에서 건조기로 말리는 것이다. 이건 '반건꽁치'일 뿐이다.

다음 하질은 짜배기이다. 꽁치를 반으로 갈라 말린 것을 이렇게 부른다. 빠르면 사흘, 길어야 일주일이면 시장에 낼 수 있고, 상에 올릴 때 머리 데고 내장 빼고 껍질 벗기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요즘 과메기의 대부분은 짜배기이다. 짜배기는 살이 노출되어 있으니 온전한 숙성이 되지 않는다. 또 살이 공기와 접촉하게 되니 산패가 일어나 찌든 기름내가 나고, 살이 얇은 부위는 딱딱하게 굳어 식감도 좋지 않다.


최상의 과메기를 얻자면 통째로 말려야 한다. 이를 통말이라 한다. ... 껍질을 벗겼을 때 맑고 고소한 기름에 꽁치 살을 절여 놓은 듯이 보인다. 요즘 포항에서도 이런 과메기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뭐든 돈벌이만 되면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쥐포> 설탕과 화학조미료 맛으로 먹는다


국내에서 쥐포를 먹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일 것으로 추측된다. 생선을 조미하여 말리는 방법은 일제에 의해 전해진 것인데, 1960년대 남해안에 쥐포를 가공하여 일본에 수출하던 업체들이 있었고 그 쥐포들이 국내에 흘러나와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쥐포는 생선의 포이지만 생선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설탕 맛으로 먹는다고 하는 것이 맞다. 쥐포에는 보통 7% 정도의 설탕이 들어간다.


시장에는 대구, 명태, 붉은메기(나막스), 학꽁치 등의 다양한 생선포가 존재하지만 한국인들은 유독 쥐포에만 열광한다. 그 열광의 이유가 혹 쥐치의 살 맛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탕과 화학조미료 맛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미 없이 쥐치의 살을 말리면 약간의 구수한 맛만 있지 입에 착착 붙지는 않는다.






<대게> 크다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대게는 잘못 사면 물이 차서 살이 무르고 먹잘 것이 없다. 좋은 대게는 살에 결이 있다. 닭살 찢어지듯 결대로 쭉쭉 찢어지는 것이 좋은 대게이다. 


물이 차 있는 대게를 흔히 물게라 한다. 물게는 살이 물 안에 담겨 있는 꼴이라 살의 탄력이 없고 싱겁다. 


단단하고 맛있는 대게는 배딱지의 색깔이 짙다. 배딱지의 무늬를 자세히 보면 투명도를 느낄 수 있는데, 투명할수록 물이 많이 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베테랑이 아니면 힘들다. 간단한 방법은 배딱지 부분을 눌러 보는 것이다. U자 모양의 그 자리를 누르는데, 쓰다듬듯이 말고, 힘을 주고 꾹 눌러야 한다. 물게는 물렁하고 물이 쭉 나온다.


대게는 쪄서 따뜻할 때 먹는 것보다 차게 식혀 먹는 것이 낫다. 뜨거울 때에는 대게의 향이 짙어 후각이 쉬 지쳐 대게의 살 맛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게> 너무 강하면 짧게 즐겨라


꽃게 맛의 진수는 게살의 단백질이 익으면서 내는 달콤함과 내장의 쌉싸레한 맛 그리고 강렬한 바닷내의 조화이다. 또 싱싱하고 알과 살이 꽉 찬 꽃게에서는 살과 알 그리고 장에서 크리미한 향이 난다. 


꽃게 맛은 신선도에 크게 좌우된다. 싱싱할수록 단맛이 강하고 비린내가 적다. ... 싱싱한 꽃게는 비린내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된장과 마늘, 파만 넣고 슬쩍 끓여 내는 탕으로 해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이보다 더 강하게 꽃게 향을 즐기려면 꽃게를 증기로 찌는 통찜이 있다. 이 통찜은 먹는 중간에 식으면서 비린내를 심하게 낼 수 있다. 처음부터 차게 해서 먹으면 되레 비린내가 덜 나고 갯내도 줄어 후각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꽃게 특유의 크리미한 향을 즐길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한자리에서 한 종류의 음식을 배 터지게 먹는 습성이 있다. 향이 약한 음식은 이렇게 먹어도 별 무리가 없다. 꽃게처럼 강한 향의 음식은 한 자리에서 많이 먹으면 후각이 지쳐 뒤에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게 된다. 최소량에서 오히려 미각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석화> 맛있는 석화 만나기가 카사노바 되기보다 어렵다


석화는 겨울이 제철이다. 혀끝이 아릿할 정도로 강렬한 바다향이 물컹한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유럽에서는 이 석화를 '카사노바의 음식'으로 여긴다. 


난 이 석화를 퍽 즐긴다. 카사노바가 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한자리에서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식성 대문이다. 석화 하나에 소주 한 잔씩 먹으면 배부르지 않고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이 석화가 수시로 나를 배반한다. 그 특유의 향은 없고 바다 짠 내만 나는 석화가 대부분이다.


돌에 붙어 자라는 진짜 석화는 조수 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 바닷물 밖에 노출된다. 그러니까 햇볕에 말려지고 바닷바람에 씻기면서 그 맛이 깊어진다. 양식 굴은 자라는 동안 물 바깥을 구경할 일이 없다. 그래서 맛이 '맹탕'이다.





<젖> 사랑이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먹는 음식이다. 밍밍하고 느끼하고 비릿해 속이 울컥 치밀어 오르게 하는 맛이다. 


어미가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인간끼리 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한 접촉이 이루어진다. ... 이런 접촉이 얼마나 평온한 것인지 아이는 안다. 젖떼기의 어려움은 이런 완벽한 접촉이 사라짐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젖을 떼고 난 다음에도 얼마간 아이는 이 사랑을 먹는다. 어미는 밥알을 꼭꼭 씹어 입 안에 넣어 주고, 생선 살을 발라 주고,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밥 위에 반찬을 올려 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 사랑은 차츰 희미해지고 그냥 영양 덩어리나 맛으로 음식을 먹게 된다. 뭔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사랑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이다. 끼니로서의 음식,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 서글프고 처연한.


결국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은, 먹고자 하는 것은, 젖과 같은 사랑이다.







<나가며>


미각은 모든 감각과 통한다. 섬세하게 다듬으면 세상이 보이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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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북디자이너 41인
프로파간다 편집부 지음 / 프로파간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좋아하는 '책'... 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요즘들어 나름 꽂혀서 읽게 된 책.

그림이 많고, 익숙한 책 디자인들을 보며 옛날 추억도 떠올라서 좋았다. 

단점이라면, '어라 이런 책이 있었네'라며 장바구니에 담아뒀다는 것... 

(언제 다 보고, 책값은 어쩔것이냐 ㅜㅜ)





책의 형식 : 작가별 질문과 답변 + 작가 스스로 꼽은 대표작들


41명의 북디자이너에게 똑같은 내용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북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게 됐나?', '당신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당신의 디자인 철학은?' 등등

그렇게 질문을 받은 각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스타일 대로 답변을 보내온다. 이것을 그대로 수록. 


그리고 각 디자이너의 북디자인 작품을 수록하고, 각 작품마다 있었던 에피소드나 여담 등 디자이너가 직접 기록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1세대 북디자이너에서부터 현재 활동중인 작가에 이르기까지, 북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나는 '컨텐츠'라는 단어를 꼽겠다.

각자마다의 스타일과 추구하는 바는 다를 수 있겠지만, 디자이너 모두들 기본으로서의 컨텐츠에 집중하고 그 컨텐츠에 충실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독자들도 안다. 내용과 디자인이 전혀 닮지 않았음을...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건가.




41인의 디자이너 중에서...



<정병규>


그의 작업 철학, 가치관, 인생관 등... 다시 한 번 곱씹어 읽어볼 만하다.




<안상수>





<서기흔>


- 편집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


소통에 고정된 방식 같은 건 없다. 다만 편집자뿐 아니라 독자를 포함해 책을 만들며 관계 맺는 모든 이들과 대화하는 마음가짐이 있을 뿐이다. ... '책을 디자인하는 일은 그대와 함께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상상하는 것이고, 함께 나눌 대화의 장소를 정돈하고 가꾸는 일이다. 나눌 대화의 내용을 생각하고, 그 내용에 걸맞은 탁자와 의자, 찻잔, 차의 맛과 향, 그리고 대화의 틈을 메우는 창가의 바람, 그 바람에 흔들릴 커튼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대 이름을 부르는 설렘에서 출발하는 것, 이것이 디자인이다.' 


요컨대, 모든 소통의 시작이요 과정이며 끝은 '사랑하는 것'이다.




; 개미, 열린책들 1997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창작과비평사 1995


; 태백산맥, 아리랑








<최만수> : 끄레 어소시에이츠 


; 명조체의 작은 제목.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작품이 좋다.



- 당신의 디자인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알렌 허버트와 밀턴 글레이저. 그들에게서 그래픽 디자인의 기본을 배웠고, 그들의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억제된 자유로움'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 당신의 디자인 철학은?


북디자인을 포함해서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것은 기능적 요소(논리)와 미적 요소(감성)의 상반된 두 가지를 동등하게 배려해 구성해 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 작품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 힘 2000],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 이철수 판화, 삼인 2005], [2008 snowcat diary] ...






<박상일> : 수류산방 


; 20세기 건축의 모험, 이건섭, 수류산방, 2006


; 우리와 함께 살아 온 나무와 꽃, 이선, 수류산방, 2006


; 궁궐의 현판과 주련, 문화재청+수류산방, 2007


; 예술가와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 디자인하우스, 2001



- 어떻게 북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게 됐나?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즉 기획과 편집, 디자인은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조혁준>


- 편집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


클라이언트(혹은 편집자)의 요구는 대체로 결과에 집중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차별성 없고 무난한 결과물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획의 의도에는 차별화의 핵심이 담겨 있는데, 책을 만들면서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소위 '시장성'에 타협해야 한다는 핑계로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차별성이 어디에 있는지, 그 차별성을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한 의견 교환을 많이 하고 싶다.



- 당신의 인생철학은? 디자인 철학은?


책 디자인은 문자, 이미지, 공간, 색 등의 다양한 다른 시각적 요소를 어떻게 같게 하고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게 만든다. 같음 속에서 다름은 빛을 발하고, 다름이 쌓여 같음-어울림, 아우라-을 지향한다.





<김두섭>


- 어떻게 북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게 됐나?


북디자인이라기보다는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모두 인정하듯 타이포그래피는 그래픽 디자인의 근간을 이룬다. 타이포그래피의 사전적 의미는 '활자를 다루는 기술 내지는 예술'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활자의 주된 매체는 책이다. 따라서 북디자인 혹은 편집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안광욱> : 책은 동시대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고 북디자인 역시 사람냄새와 휴머니즘이 느껴지도록 표현해야 한다.


; 야생초 편지, 황대권, 도솔 2002


;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최성현, 도솔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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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4
존 버닝햄 글.그림 / 보림 / 199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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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발랄하고 창의력 톡톡 넘치는 이야기 보따리가 있다는 평가에 혹해서 산 책.


그런데, 책 내용에 정말 실망했다.



책은 이런 얘기이다. 엄마가 6~7세 정도 되는 스티븐에게 물건을 사오라고 부탁한다. 


아이가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가지고 집에 오는 동안, 아이들에게 친숙한 곰, 원숭이, 돼지 같은 동물들이 차례로 나타나서는 달걀을 내놓으라는 둥, 바나나를 내놓으라는 둥 협박(?)을 한다.


그러면 스티븐은 동물들을 약올리면서 오히려 골려준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5세 우리 딸이랑 함께 읽다가 깜짝 놀랐다. 내용이 너무 삐딱하고, 아이의 말들이 너무 악하다.


누군가는 자유롭고 신선한 이야기라고 극찬을 하던데... 글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 아이들에게는 다시는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다. 


곁들인 그림도 맘에 안 든다. 스티븐의 표정이나, 동물들의 비참한 모습(?) 등에서 웃음을 주려고 했던 것 같으나 전혀 웃음이 안 나온다. 


내 주변에서 누군가 책을 사려고 한다면 뜯어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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