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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임희근 역. 돌베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세계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필자의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 용기가 고스란히 돋보이는 소책자이다.
필자는 분노를 인간의 기본 요소로 본다. 이 대목에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뒤엎은 예수를 묘사하며 '의분'이라고 표현한 성경의 기록이 오버랩된다.
분노는 무엇을 낳는가? 분노는 참여를 낳는다.
필자는 분노하고, 참여의 기회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분노하지 않는 것은 마치 죽어있는 것과도 같다.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p.21
우리의 상대는 이제 하나의 작은 특권 계층만이 아니다. ... 이제 우리의 상대는 광활한 세계이며, 그 세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더 강력한 상호연결성 속에 살고 있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p.26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주변을 둘러봐요. 그러면 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이민자, 불법체류자, 집시들을 이 나라가 어떻게 취급했는지 등등-이 보일 겁니다.
강력한 시민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체적 상황들이 보일 겁니다. 찾아요. 그러면 구할 것입니다!"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p.32
미래는 비폭력의 시대, 다양한 문화가 서로 화해하는 시대라고 나는 확신한다.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는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만 한다. ... 폭탄을 던지는 테러리스트를 용서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다.
p.33
사르트르는 임종을 3주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끔찍한 지금의 세계가 기나긴 역사의 발전 속에서 보면 그저 한순간일 뿐인 이유를, 숱한 혁명과 봉기를 이끈 주도적 힘의 하나는 언제나 희망이었음을, 내가 미래를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래도 미래는 희망이라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p.34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우리는 그 길을 따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압제자와 피압제자 양측이, 압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 이상 테러리즘의 폭력이 없게 된다. 증오가 너무 많이 쌓이도록 놓아두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이런 분들의 메시지는 이미 이념 대립과 정복 만능의 전체주의 시대를 지난 오늘의 세계에서 정말로 타당한 내용이다. ...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권을 발판으로 삼아야 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의 분노를 촉발해 마땅하다.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평화적 봉기를 위하여]
p.38
그렇다. 이러한 위협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추천사] / 조국 교수
p.79
이제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에 맞서서 "평화적 봉기"를 일으킬 때다. 이 '평화적 봉기'의 수단은 다름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각종 기본권이다.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자. 온라인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오만과 횡포, 불법과 탈법을 감시하고 비판하자. 단호하게 그리고 발랄하게. 또한 무조건 투표하자. 투표하지 않는 자는 "암묵적인 찬동자"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현재의 상태를 묵인, 방조하겠다는 의사의 다른 표현이다.
어떤 이는 '중용'과 '중도'를 조언한다. 자신의 사유와 행동을 성찰하고 반대편과 소통하고 그 입장을 존중하고 공유점을 확보하는 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존 F. 케네디 역시 단테의 신곡을 재해석하며 말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 바꾸기에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