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패니메이션 하드코어 - 에로틱 아니메 분석 가이드
헬렌 매카시.조너선 클레멘츠 지음, 한창완.이정훈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8월
평점 :
「 저패니메이션 하드코어 」- 핼렌 매카시, 조너선 클레멘츠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어떤 사람들에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대표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독창적인 영화들이 먼저 생각날 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어릴 적 보았던 <미래소년 코난>, <은하철도 999>, 혹은 <포켓몬스터>를 비롯한 추억의 애니메이션들이 떠오를 수도 있고요. 여튼, 사람들에게 저런 질문을 하면 모두 갖고 있는 이미지가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아무래도 말이죠.
그러나 -경우에 따라 그렇지 않다고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으레 뒤따르는 이미지는 바로 '폭력성'과 '선정성'입니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요즈음 들어서도 그와 같은 인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대마다 다르고, 또한 각 세대마다 그에 대한 이미지는 많이 다릅니다만 폭력과 에로티시즘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오늘날도 여전하죠.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그러한 요소, 특히 성(性)적인 요소를 빼놓고는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애니메이션 문화의 발달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 책 <저패니메이션 하드코어>는 바로 그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정성에 대한, 에로티카에 대한 분석입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같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비교적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쿨 디바이스>, <크림레몬>, <우로츠키 동자>, <요수도시>, <라 블루 걸> 등의 작품들은 일명 '아는 사람만 아는' 작품일 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 일명 '에로틱 아니메'의 범주입니다. 성애 장면이 들어간(혹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애니메이션이기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죠. 여기에서의 작품들은 성에 관해 모호하고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아닌, 성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피하지 않고 여러 측면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정면으로 뛰어드는 작품들입니다.
<저패니메이션 하드코어>는 이렇게 섹스로 흥건한 작품들, 즉 성애를 다룬 일본 애니메이션을 서구인의 눈으로 보고(저자가 서양인이니까) 연구하고 비평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주 전개방식은, 성인 애니메이션에서 다뤄지는 큰 요소들을 나누어 역사를 설명하기도 하고, 그에 대한 개념을 짚으면서 관련된 개별적인 작품들까지 하나하나 언급하는 식입니다. 때문에 개별 작품에 대한 기본정보가 제공되며, 그에 관한 여러 해석과 관찰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인 애니메이션에 관한 단순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섹스와 공포, 미소년· 미소녀 취향, 성역할, 동성애 등 에로틱 아니메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주제와 그 기저에 깔린 일본의식의 흐름도 어느 정도 분석해내고 있고요. 1990년대까지의 일본 19금 애니메이션의 발생기원과 성장 배경, 내외적 유형과 각각의 특징을 분석하고, 일본 내에서도 하위문화로 분류하는 그러한 성인 애니메이션이 그토록 거대한 규모로 커진 원인 또한 짚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자신의 모국인 영국에서 문화당국이 일본 성인 애니메이션에 대해 취해온 갖가지 제재와 검열 등 특정 문화에 대한 간섭과 통제 또한 소개하고 있죠.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작품들의 나열뿐 아니라 그것들이 다른 분야의 매체와, 더 나아가서는 현대 일본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일본, 더 나아가 세계의 음지(陰地) 문화사에서 이러한 '에로틱 아니메'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해주고 있고요. 또한 일본 성인 애니메이션 자체의 표현기법의 종류, 역사를 설명해주는 부분 또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제 경우 책에 언급되는 성인 애니메이션들은 이름만 들어봤지 상당히 생소했는데, 그런 작품들에 대해 잘 몰라도 애니메이션 역사 혹은 작품론 전반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서적입니다. 다만 교양서적이 아닌 전문 학술서적에 가까운 느낌이라, 가볍게 훌쩍 읽을만한 책은 아니네요.
이 책의 단점이 딱 하나 있다면, 발행년도가 꽤나 오래된 책이라(2004년) 최근의 작품들 그리고 최근의 비평 사조들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책이 얼마 없는 가운데, 더군다나 성인용 애니메이션에 관한 연구는 도통 접하기가 힘든 만큼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애니메이션- 문화의 한 분야로써 호기심이나 탐구심을 조금은 채워줄 수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