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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끼호떼 1 -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창비에서 낸 스페인어 완역본입니다.
보통 '돈키호테'라고 발음하고 그렇게 적지만 이 책은 보다 스페인어 발음에 가까운 번역을 추구한 탓인지 제목도 '돈 끼호떼'로, 그리고 작중의 각종 등장인물과 지명에서도 산초 대신 '싼초'로, 로시난테 대신 '로신안떼'로 쓰는 등 스페인어 발음에서 비롯된 된소리를 그대로 살리는 번역을 했습니다.
학교 수업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어릴 적에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돈키호테 서적과 만화책 등을 읽어보았기에 <돈키호테>가 어떤 책이고 그 주인공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대충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돈 키호테>를 읽어보니, 제가 생각했던 어린이용 동화책의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와는 판이하게 다르더군요. 일단 책의 분량부터 어마어마합니다. 두 권짜리인데다가 페이지가 무려 두권 모두 800페이지를 넘어가요. 그만큼 돈키호테가 겪는 일,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양하고도 범위 또한 넓고 깊게 묘사합니다.
또한 책을 읽어보니 <돈키호테>의 인물들은 이전에 책을 읽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 인물들의 이미지와는 판이하게 다르더군요. 어린이용 동화책에서는 돈키호테가 엉뚱하고 괴팍한 성격을 가진 노인으로만 그려져 있었고, 주요 사건이라고는 대부분 하인 싼초와 함께 풍차와 싸우는 장면만 주로 언급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돈키호테는 제게 있어서 '우스꽝스러운 미친 사람' 이라는 이미지 외에는 없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돈키호테'에 대한 이미지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돈키호테는 기사도에 심취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엉뚱한 인물인 것은 여전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려깊고 자기 나름의 사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목적과 이상을 향해 행동할 줄 아는 인물이었고, 자신의 꿈을 향해 우직하게 달려나갈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미친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굉장한 지식과 언변,깊은 생각을 내보이며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는 다층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리고, 책에서 묘사된 돈키호테의 하인, 싼초의 모습은 돈키호테 못지 않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특히 돈키호테의 하인인 '싼초'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책에서 전개되는 내용 자체를 재미지고 풍성하게 합니다. 기행을 일삼는 주인을 항상 의심하면서도, 섬을 통치하게 해준다는 주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순박하지만 때론 속물적인 성격이 작품에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표현되곤 하죠. 이 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돈키호테와 싼초의 매력 덕분이었습니다.
돈키호테는 기사도를 수호한다는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 현실을 한 번 돌아보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아무리 과거의 유물인 기사도를 추구한다고 해도 현실세계에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되고 배척받는다는 한계가 나타나기도 하죠. 그럼에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돈키호테는 자신의 신념을 좇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돌진하고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생각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력과 결단력에 있어서도 현대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상에도 부합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한편 <돈키호테>는 사라져가는 르네상스와 기사도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세르반테스가 살던 시대는 한창 르네상스의 열기가 가시고 기사 따윈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평온한 시기의 스페인이었죠. 돈키호테는 그러한 지나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상향을 향한 동경과 목표, 꿈을 가지고 있던 인물입니다. 미친 사람이었던 건 맞지만, 우리 또한 삶에서 '미쳐야' 할 시기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꿈꾸던 일을 이루기 위해선 말이죠.
자신의 이상을 가지고 자유의지에 맞추어 행동하는 삶. 그리고 열정을 담고 있는 한 인간의 이상과 꿈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인간다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